[교단칼럼] 교육이 없다

@김홍식 일동중 교장·전 광주서부교육장 입력 2021.10.05. 11:12

평생 몸담았던 교단을 떠나 홀가분한 몸이 되고 보니 이제야 교육이 제대로 보인다고 하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데도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 가끔 이와 비슷한 말을 선배나 친구에게서 듣는 경우가 있으니 이런 일은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닌듯하다. 그렇다고 현직에서 처리했던 일이 크게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 뒤늦게 좀 더 깊은 이해와 생각으로 와닿는 경우가 있어서 '교육이란 할수록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뒤늦은 성찰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생활지도 영역이다. 학생 개개인의 처지와 성장 배경은 물론 생각이나 성향 등이 저마다 달라서 천편일률적인 기준과 처리 방식으로는 항상 어려움이 뒤따른다. 지금은 아니지만 회초리라도 들고 따끔하게 종아리를 때려서 좋은 결과를 얻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따뜻하게 감싸주며 다독여줘야만 하는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렇게 처리하면 금세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속된 말로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안 봐준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면서 지도교사의 공정이 심하게 의심받게 된다. 대부분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학생들은 편애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하는 선생님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한번은 한밤중에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학생이 잡혀있으니 담임교사가 와서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면 훈방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학생의 부모님이야 멀리 시골에 있으니 올라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일로 알릴 수도 없는 가정환경이다. 이런 연락을 받고 달려가지 않을 담임선생님이 어디 있겠는가.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뒤 집으로 데려와 함께 자고 다음날 학교로 갔다. 간밤에 있었던 일은 이심전심 둘만의 비밀로 묻어놓고서.

학급에서 아침 자율학습 시간인데 정해진 시간을 어기고 한 녀석이 나타났다. 규칙이나 규율이 매우 엄격하던 시절이라 결석을 하거나 지각을 하면 호된 질책이 뒤따르곤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담임선생님의 후속 조치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어젯밤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쪽에 가만히 앉아 있는 녀석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사안이 다르긴 해도 경중을 따지자면 더 혼날 녀석이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따라 평소 엄격했던 담임이 무척 부드럽고 관대해진다. 아이들은 담임의 이런 사정을 알 리가 없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 문제가 학교를 넘어 크나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폭력은 그 어떤 폭력이든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게 모두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크고 작은 학교폭력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이를 처리하느라 교사와 학교, 그리고 당사자 간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뒤따른다. 그리고 모두가 만족하기보다는 모두가 불만스러운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사법기관은 아니다. 교육적 처벌도 어디까지나 학생을 선도하기 위함이다. 처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언제고 뒤바뀔 수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원만한 관계 회복은 성장기 교우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사정은 어떠한가? 일단 학교폭력이라고 할 만한 사안이 발생하면 이를 인지한 교사는 신고 의무부터 떠올린다. 미신고나 은폐, 축소의 오해를 받고 그에 따른 책임으로부터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래서 일단 신고부터 해야 한다. 일단 신고를 하면 할 일은 다한 셈이다. 교사의 교육력이 투입되거나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정교하게 마련된 학교폭력 처리 절차 매뉴얼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교사는 있어도 교육은 없다.

물론 사안의 경중을 정확히 따져 절차에 따라 적정하게 가해학생을 처벌하고 피해학생을 보호하는 일에 그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교사의 교육력도 일정 부분 인정되고 개입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교육적 지도가 배제된 방식으로는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은 물론, 일단 발생한 사안도 더 큰 문제로 비화하기 쉽다. 그래서 지도교사의 양심과 교육적 역량을 토대로 학교폭력 전담기구나 학교장 종결처리제가 좀더 탄력적으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선생님들의 교육력이 위대했음을 증언하는 성장한 제자들의 말을 종종 듣는다. 재량권 남용이나 피해자의 입장을 무시하는 경우만큼은 철저하게 경계하면서도 학교폭력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시선이 조금은 교육적이면 어떨까?

김홍식(전 광주서부교육장·굿네이버스 광주후원회장)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