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수능, 다음 날이면

@김현주 광주인성고 교사 입력 2020.12.07. 16:35

뚜우 뱃고동 같은 종이 울렸고 그렇게 1교시 국어 시험은 시작되었다. 한 달 가까이 늦어진 수능날. 실핏줄 같은 나뭇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예민하게 곤두서 있었다. 겨울 햇빛은 충분히 따뜻하지 못했으며 해답을 찾지 못한 눈빛들은 문제를 건너 다니고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코로나19 자가격리 대상 학생들을 위한 별도 시험장을 운영하였다. 감독관들은 방호복을 입고 시험실 감독에 들어갔다. 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 색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시험실에 들어서는 감독 교사들의 모습은 훗날 한 시대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감독관들은 방호복을 벗기 전에 학생들의 답안지를 봉투에 넣은 후 다시 봉투를 소독하고 답안지 회수함에 넣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방호복을 입고 들어간 감독관들은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방호복끼리 마찰하며 나는 소리가 수험생들에게 방해가 될까 염려하여 거의 꼼짝하지 못하고 시험 감독을 진행하였다. 그래도 우리 미래 세대인 수험생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참아냈다. 매 시간 시험실을 환기했고 점심 시간 수험생들은 자신의 자리에서만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환기, 이 지난한 과정이 흐르고 시험은 끝났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해가 진 어스름한 길 위에서 차가 밀릴 때 유쾌함이나 뿌듯함보단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은 왜일까? 코로나19 시기에도 전국 단위 시험을 치른 나라로 세계 언론에 오르내린 우리 나라의 수능, 우리 수능 감독관들이 방호복을 입으면서까지 지켜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공정이란 이름 아래 벌이는 아이들의 치열한 경쟁은 아니었을까?

머지 않은 시기에 고교학점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수업과 학습에 대한 아이들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고교학점제의 미래에 대해서는 일정 공감이 간다. 그러나 입시 제도의 변화 없이,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신 평가의 방향 전환 없이는 고교학점제의 방향이 빛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교사의 수급도, 학교 공간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우선 학교 현장에서 고교 학점제에 따른 학생들의 교과 선택 양상을 보면 자신의 관심이나 진로의 관련성 여부보다는 내신 관리나 수능 대비를 중심으로 과목 선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흥미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하는 학생 수가 많아서 비교적 내신 등급을 관리하는 데 유리한 과목으로 눈길을 돌리거나, 3학년에 가서는 비교적 평가의 부담이 덜한 진로선택 과목을 선택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그리고 3학년 교실에서는 당장 수능 과목이 아닌 경우엔 그 교과 수업 시간에 수능 과목을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하거나 수업에 무기력한 참여를 보이기도 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도 충실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 놓곤 한다. 이는 지금의 평가 방식을 그대로 두고 고교학점제를 계속 추진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실효성 있는 교육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수업에 대한 고민과 변화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본다. 더불어 내신의 절대평가 도입과 수학능력시험의 자격고사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 단계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교육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해나가야 한다. 더디 가더라도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언젠간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사회적으로 협력적인 인간상이 왜 필요한지 경험하고 있다. 교육은 그런 사람으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과 시간이다. 이런 취지에 걸맞게 학교 현장에서 수행평가나 수업에선 학생들의 협력에 기반한 다양한 활동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전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의 방식은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지필 평가의 끝에 블랙홀처럼 수학능력시험이 있다. 보물처럼 여기던 온갖 문제집과 교재들이 수능 다음날이면 오물이 되어 아이들 두 손에 들려 재활용 쓰레기 폐지함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자니 우리가 폐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 밀리던 차량들이 큰 물음표처럼 굽어진 길을 돌아 나가고 있다. 수능, 그 다음을 꿈꾸어야 하는 때다. 김현주(광주인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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