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동경했던 광주 청년, '생활정치' 실현하다

입력 2023.01.25. 14:14 이삼섭 기자
[지방청년희망보고서⑫] 장현규 마을활동가
경제학 전공했지만 공동체 가치에 매료
9년간 용봉동서 주민자치 모델 만들어가
개인 성장에 '눈에 보이는 변화'까지 만족
"청년들에 취업 외 폭넓은 도전 보장해야"
장현규 마을활동가가 지난 16일 광주 북구 용봉동 마을발전소 사무실에서 무등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지방청년희망보고서⑫] 장현규 마을활동가?

장현규(33) 마을활동가는 언제인지 모를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공동체에 대한 동경심을 품어왔다. 작은 단위의 지역을 함께 살아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되는 모습, 그들 각각이 주인으로서 공동체 어느 부분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 그의 상상은 광주의 한 마을에서 현실이 돼가고 있다. 동네의 작은 움직임들을 모아 각각의 역할을 부여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주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장 활동가의 이야기를 지난 16일 광주 북구 용봉동 그의 상상제작소에서 들어봤다.


◆"마을활동가로 불러주세요"

전남대 상대로 불리며 원룸들이 밀집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을발전소'가 그의 상상제작소다.

직함은 마을발전소 사무국장. 함께 마을에서 생활정치를 해보자는 학과 선배와 함께 이곳에 들어선 지도 벌써 9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제법 이 동네의 '터줏대감'이라고 할만하다. 오래전 마을의 사랑방으로 불리던 곳의 안주인, 혹은 그에 준하던 옛 복덕방 주인일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주민들이 시시때때로 입구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며 안주인은 있는지, 동네 사람은 있는지 두리번거리다 큰 의미 없는(?) 인사말을 내뱉고 가는 게 일상적인 공간이 장 활동가의 일터다.

장현규 마을활동가(마을발전소 사무국장)이 지난 16일 광주 북구 용봉동 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마을활동가가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정확하게 개념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아직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마을활동가라고 생각하고 또 마을활동가로 표현하고 싶어요."

마을활동가는 지금 그를 나타내는 가장 적확한 단어이면서도 동시에 마을활동가를 무엇으로 정의할지를 여전히 고민 중이다. 비단 그 고민은 그뿐만 아니라, 마을활동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매일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주제다. 지금 장 활동가에게 마을활동가란 마을이라는 지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주민들의 공동체적 행위와 생각들을 모아 사업으로 기획하고, 또 주민들을 조직화해 의제를 설정하고 추동해 궁극에는 마을의 변화로 일궈가는 사람들이다.


◆운동권에서 생활정치로 뛰어들다

전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장 활동가는 학업에는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고 했다.

그보다는 풍물패의 매력에 푹 빠져 활동하면서 공동체라는 가치에 대해 깊은 탐구를 했다. 옛 80~90년대 학생운동의 5한 축을 담당했던 풍물패는 옅어지긴 했지만 운동권 문화가 남아 있었고, 장 활동가 또한 풍물을 통한 학생운동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괴리감이 생겼다.

"당시 운동권에 있으면서도 운동권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뭔가 이상과 가치는 높지만, 말하는 비전들이 실생활과 맞닿아 있지 않은 느낌이 계속 들었고…. 저 또한 한편으로는 후배들에게 왕년에 어떻고를 이야기하는 폭력적인 꼰대 같은 생활을 길게 하다 보니 스스로 피폐해지더라고요."

더욱이 당시 4·16 세월호 참사를 두고 '일베' 등 커뮤니티에서 보인 폭식 투쟁과 같은 반인륜적 폭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웃의 슬픔에 비아냥거리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공동체 의식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지역에서 '생활정치' 운동을 하고 있던 운동권 선배에게서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들어왔다. 멀리 떨어져 있는 이념과 가치가 아닌, 공동체 정신을 기본 바탕으로 손에 잡히는 뭔가를 해보자는 제의였다. 시민사회 활동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갖고 있던 장 활동가는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생활정치라고 하면 흔히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들이 본인 활동을 위한 이념적 수단으로 말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생활정치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생활정치의 최소 단위는 (마을에서의) 주민자치라고 생각해요."

가족을 넘어선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마을에서부터 변화를 일궈내는 '작은 정치'의 시작이었다.


◆주민자치 우수 모델 성과

대표자를 통해서가 아닌, 주민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활정치'를 꿈꾸고 야심 차게 마을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시작은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진 '매뉴얼'이 있을 리 없었다.

애초 그가 몸담은 '생활정치연구소'(현 마을발전연구소) 목표가 주민자치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활동 초기에는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다했죠. 크리스마스 행사부터 정월대보름 행사도 했고요. 그러다 2017년도에 용봉동 주민총회를 개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과를 이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민총회를 개최해 주민들이 원하는 우선적인 의제를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 쓰레기 처리 문제부터 교육, 문화, 안전한 마을 등이 핵심 의제로 선정됐다. 그 뒤 쓰레기 문제의 경우 자원순환, 안전은 안심 컬러벨트 도입 등 의제별 활동 사업으로 구체화했다. 그러면서 마을의 주요 의제를 선정한 뒤 행정과 협업을 통해 변화까지 이끌어 내는 일종의 '모델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장현규 마을활동가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마을발전소는 지역의 자생기관들과 행정과 적극적 협업을 통해 문제 의제화부터 해결까지 해내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제21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마을발전소 제공

이 같은 모델링 사례는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제21회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최우수상(국무총리상) 수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300개 마을이 참가한 대회에서 당당하게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주민자치의 핵심은 주민들이 스스로 의견을 모아 의제를 결정한다는 것이에요. 또 주민의 요구를 실현해 낼 수 있는가에 있고요. 그런 점에서 용봉동에서 성과는 만들어지고 있고, 이 모델을 다른 인접한 동(洞)에 제안해보려고 합니다."

덩달아 주민들의 자치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덤이다. 쓰레기 줍는 행사에 단순히 참여했던 주민들이 '줍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되겠다'는 문제의식에 자원순환 활동가로 변모했다. 이뿐만 아니라, 각 주민 공동체 사업에 참여했던 이들이 각 분야에서 예비활동가로 성장하는 등 마을의 지속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또한 그의 자부심이다.


◆"개인과 마을은 함께 성장"

용봉동에 둥지를 튼 것과 달리 그가 태어나 자라서 현재 살고 있는 곳 또한 용봉동이 아니다.

대학교 재학 당시 풍물패 활동을 하며 맺어진 인연으로, 용봉동에서의 마을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남대 상대 출신인 그가 상대 뒤편에 사무소 자리를 잡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대학생 때 오치동에 살았는데, 대학교까지 걸어오는 통학로가 위험했어요. 마침 지역개발학 수업을 들으면서 안전한 통학로를 위한 리포트를 제출했는데, 그때 구상한 아이디어가 '안심 컬러벨트'에요. 대학교 생활이 지역공동체와 연계된 셈이에요."

실제 용봉동을 무대로 한 마을발전소 후원자 중 적잖은 수가 전남대 출신의 선후배들이다. 지역 대학교와 지역 공동체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그가 발 딛고 있는 용봉동이라는 거점 공간 속에서 그 스스로도 주인으로 만들어 나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성장하면서 공동체 또한 함께 성장하는 셈이다. 그가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처럼, 용봉동 또한 '용봉다움'을 찾아가는 것이다. 마을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잘 알려진 큰 시민단체로부터 일자리 제안이 와도 거절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아직 그 스스로가 광역 단위 활동가가 아닌, 마을활동가로서의 쓰임새가 더 크다고 했다. 그가 있는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눈에 보이는 변화'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마을활동은 블루오션이다

긍정적 변화가 적진 않지만 대부분의 마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가뭄이 지속되면 강이 아닌 지류가 먼저 말라가는 것처럼,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흑운은 지방 도시의 작은 마을에 먼저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는 그나마 나은 상황으로, 전남의 더 작은 마을에서의 소멸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이런 때 장 활동가는 오히려 마을에 더욱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장현규 마을활동가 제공

"저는 지역에 충분히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요.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마을활동이야말로 블루오션입니다.

정책적으로 주민자치는 시대적 흐름이고, 공공의 영역으로 변환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본인들이 몸담고 있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주민들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나가는 것이에요."

현재의 청년들에게 마을활동은 비주류적인 활동이고, 또 정치의 한 영역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장 활동가는 마을활동을 하고 싶은 청년들은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다만, 청년과 마을을 연결할 수 있도록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했다. 마을활동은 민간이 아닌 공공영역이고, 주민자치는 헌법상 보장된 내용이기 때문에 법으로 마을활동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마을(읍·면·동) 하나에 3명의 마을활동가가 배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명은 주민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활동가, 한 명은 실무를 담당하는 활동가, 나머지는 청년 활동가다. 특히 청년활동가의 경우 광주형일자리처럼 주거까지 제공해 마을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용봉동에서 주민자치가 안착한 이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남에서도 소멸을 앞둔 지역에서 마을활동가로 정착해 활동하고 싶은 희망도 드러냈다.


◆청년=취업으로의 접근 안 돼

"청년 문제를 취업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일자리 던져주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는 기성정치, 기성 행정 풍토에는 문제가 있어요. 청년들이 뭘 원하는 지를 들여다 봐야 한다는 거죠."

지역의 청년들이 더 많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타지역으로 떠나면서 '청년소멸'이 현실화되고 있는 데 대해 장 활동가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취업 지원이 마치 청년 문제의 해결책인 듯한 기존 청년정책은 문제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장 활동가는 광주의 대다수 청년정책들이 또한 청년들에게 기성 어른들이 용돈을 주는 것 이상이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청년들이 취업 외 다른 활동을 폭넓게 또 도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지역에 있는 청년들이 제기하는 청년 담론과 문제 의식에 대해서도 취업과 창업 그 이상의 것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또 청년들이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요구는 충분히 많지만, 구체적으로 본인이 나서 해결해내려는 태도가 아쉽다고도 말했다.

그런 점에서 장 활동가는 그가 하는 주민자치와 청년담론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인이 되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붕 떠 있는 담론으로 그칠 게 아니라, 주권의식을 가지려는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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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카드뉴스] 동명동 핫플레이스, 보해소주 팝업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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