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N잡러' 광주 이야기꾼, 예술로 변화 이끈다

입력 2022.10.05. 11:40 이삼섭 기자
[지방청년희망보고서⑦]
영화감독·작가·기획자…문화예술 N잡러 이동석씨
황무지 '광주'의 장남…동생들에게 도움줄 것 고민
지역 예술 지망생들 모아 '잘하기 금지' 프로젝트
"다양한 사람들 만나야 좋은 서사 만들어져" 조언
지난 21일 광주 광산구의 한 카페에서 이동석씨가 광주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지방청년희망보고서⑦] 영화감독·작가·기획자…문화예술 N잡러 이동석씨?

7년 차 직장인, 독립영화감독, 작가, 노동 활동가, 커뮤니티 기획자…. 이동석(37) 씨는 본인을 N개의 것들로 소개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다가도 생계를 잇기 위해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고용을 지켜내기 위해 노조 운동을 하며 분투하기도 했고, 분절된 채 외롭게 활동하는 예비 예술인들을 연결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N개의 것들의 무대는 단 한 곳, 그가 태어나고 자란 광주다. 특별히 의도한 게 아닌, 광주에서 살아가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한 청년이다. 서울 편향적 사회 구조에 분노하고, 더 나은 기회를 위해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지역에 살면서 지역을 이야기하지 않음에 슬퍼하는 청년이다. 예술로서 더 살기 좋은 광주를 위해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예술가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지금은 광주가 영화 제작 지원이 좋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거의 지원이 없다시피 했어요. 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 거니깐요. 광주에서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이 씨는 어려서부터 줄곧 영화감독을 꿈꿔 왔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지금껏 줄곧 영화 현장에 있었다. 영화 스태프로 시작해 독립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독립영화를 계속 찍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화에 관한 교육도 했고 창업하기도 했다.

한때는 서울 혹은 그 주변에서 영화 일을 했던 적도 있지만, 10여 년 전 즈음 광주로 왔다. 서울은 그에게 영화 창·제작을 위한 여건이 좋은 곳인 동시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 하나 쉽게 내주지 못하는 곳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태어나 줄곧 자란 공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건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광주의 콘텐츠 산업이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기반이 턱없이 부족했다. 영화 제작을 위한 장비 하나,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갈 스태프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또 영화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는 지역 환경에서 제대로 지원 받기도 버거웠다.

그러나 '될 수 있는 걸 하자'는 그의 신념은 의외로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광주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던 '미디어아트'였다. 영화인으로서의 미디어아트에 대한 접근은 그에게 새로운 흥미를 주는 동시에 비슷한 듯 다른 분야의 융합 시도였다. 그렇게 독립영화감독이자 미디어아트 작가 '이동석'이 탄생한 것이다.


◆서울 편향적 미디어에 반감…광주를 무대로

"서울 사람이 그린 상상 지도라는 게 있어요. 서울과 경기도 외에는 논밭에 부산은 바다, 제주도에는 귤. 이 정도가 끝이에요. 지방은 타자화된 시골로 그려지고, 탈색되죠."

한동안 미디어아트에 집중하던 이 씨였지만 5년여 전 광주에서도 영화 제작 여건이 나아지면서 다시금 영화에 대한 갈증이 찾아왔다. 이번엔 영화가 아닌, 웹드라마를 제작하기로 했다. 독립영화라는 장르가 서서히 가라앉고 대신 유튜브나 플랫폼 영상 채널 등이 확장되면서 웹드라마가 급속도로 성장 중이었을 때다.

하지만 제작된 웹드라마라고는 온통 서울 혹은 서울 근방의 이야기. 심지어 광주에서 제작된 웹드라마조차 서울이 배경인 척하는 미디어 편향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것에 대한 반감은 '광주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하는 웹드라마 제작으로 이어졌다. 아이돌하면 당연하게 서울이 배경이라고 인식하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싶었다.

지난 2018년 9월 이동석씨가 독립영화 '광주인디요' 상영회 중 관객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이동석씨 제공

"광주의 이야기, 광주의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어요.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이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이름을 따 와 '동명동은 언제나 맑음'이라는 웹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만들면서 광주를 점점 살기 좋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고요."

이처럼 기존 인식에 대한 반감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그가 영화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다. 최근에 개봉한 독립영화 '지원x지원' 또한 그가 영화계에 있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묵인했던 성적 억압, 성폭력 등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저는 반성하는 게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반성하는 것을 보편적으로 형성하는 제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화를 줄 것이라고 믿고,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잘하기 금지' 프로젝트

"한국이라는 가정이 있다 했을 때 부모인 한국은 장남인 서울에게 모든 걸 몰아줬어요. 나머지 형제들은 생계(산업화)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했다 치면 광주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뺏긴 천덕꾸러기 같은 자식인 것이죠. 저는 그런 천덕꾸러기 밑에서 태어난 장남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이 씨는 광주지역 20대 청년들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슬픔과 함께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서울로 가지 못한 지역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는 다큐멘터리에서 대부분 출연자들은 서울에 가지 못한 것을 슬픈 감정, 불평, 불만을 드러냈다. 그것을 보며 그 또한 20대 당시 자신이 느꼈던 똑같은 감정을 떠올린 것이다.

"광주라는 집안에 장남이 된 것 같아요. 제 동생 같은 분들이 부모인 광주에 불만, 불평을 늘여 놓는데, 부모님이 유능하고 유복한 건 아니지만 부모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지 않나. 뺏기고 남은 것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분들에게 10살 정도 더 먹은 사람으로서, 장남 같은 사람으로서, 부모를 조금 더 이해하는 입장에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영화인을 꿈꿨던 그가 광주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배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보통은 학교를 진학해 형성한 인적 네트워크, 그들 간 교류하면서 얻어지는 유무형의 가치들을 광주에서는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실제 지역에서는 영화나 시나리오 관련한 전공이 있는 대학이 없다.

그 스스로도 독학하면서 고생했던 것들, 누군가 도와줬더라면 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후배들에게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지역의 예술 지망생들을 모으는 작업, 이른바 '잘하기 금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예술인은 하면서 완성…"함께 하라"

처음에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연결하는 '아무튼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조차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어, 일단 스스로를 위해 잘하지는 않아도 글을 쓰자는 의미로 '잘하기 금지'로 명명했다.

"광주에서 살면서 예술을 독학하다 보면 기준 잡기가 쉽지 않아요. 그들이 보기에 훌륭한 작품들만 보게 되니깐요. 그것만큼 못하게 되면 무의미하게 된다고 생각하다 보니 포기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다양하다. 대부분 현업을 이어가며 틈을 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 중에는 몸이 불편한 20대 여성도, 중년의 여성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생각을 주고 받는 일종의 대학과 같은 기능을 하는 '커뮤니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씨 스스로를 '커뮤니티 기획자'라고 부른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얻어지는 유무형의 가치들이 광주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해요. 제 스스로가 느꼈고요. 함께 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다 같이 엉망진창이라는 점이고, 그러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하면서 완성하는 게 익숙해지는 거죠."

희망적인 것은 최근 유튜브를 통한 영상 콘텐츠 제작들이 활발해지면서 광주에서도 기존에 없던 다양한 창작자 그룹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것이다. 특히 광주에는 비엔날레와 아시아문화전당과 같은 문화기관들이 있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두드러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동일 집단, 닫힌 환경을 피하라"

"매일 만나는 친구들 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매일 만나던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고요."

이 씨는 지역에서 예술을 꿈꾸는 청년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기를 권했다. 특히 지역의 청년들은 집단으로부터 고립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쉽사리 닫힌 환경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높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예술에 있어 동일 집단과 닫힌 환경은 가장 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작가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서사라는 것은 자기 주변 사람들끼리 이야기해서는 절대 좋은 서사를 만들 수 없어요. 낯설고 다양한 사람들이랑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특히나 광주에 살면 더 그렇고요. 정 어렵다면 '잘하기 금지'에 함께하시면 됩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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