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추억의 다리···희생양" vs "위험하고 범람 원인···철거 필요"

입력 2022.11.28. 15:35 선정태 기자
구례 옛 문척교 철거 두고 주민들 반발
‘50년 역사 무시, 수해 원인으로 지목’
철거 결정 하고도 ‘보존 약속’ 군수 비난
“안전위해 무작정 반대 못해…주민 결정”
구례군 옛 문척교 입구에 걸린 철거 반대 현수막.

2020년 최악의 수해 피해를 입은 구례군의 옛 문척교 철거가 주민들의 반발로 지연되고 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이 다리를 수해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철거할 것을 알리자, 주민들은 50년 이상 사용한 다리를 희생양 삼아 철거한다며 반발하는 등 환경부와 지역민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기에 주민들은 김순호 구례군수가 6·1지방선거 당시 이 다리를 철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선거 후 곧바로 말을 바꿨다며 분개하고 있다.

28일 영산강유역환경청과 구례군에 따르면 옛 문척교는 1972년 섬진강을 사이로 나누어진 구례군과 당시 섬이었던 문척·간전면을 이었다. 폭 7m 길이 420m의 이 다리는 올해로 50년째 문척·간전면 주민 2천여 명이 구례읍을 오가는데 활용되고 있다.

옛 문척교 인근에 건설된 새 문척교는 차량이 주로 이용하고 옛 문척교는 보행자나 경운기, 자전거 등이 주로 오가고 있다.

이 오래된 자리가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2020년 여름 수해 때문이다. 당시 폭우 등으로 구례읍 양정마을과 5일 시장 등이 물에 잠겼는데, 이 다리가 수해 원인 중 하나로 꼽힌 것이다.

구례군 옛 문척교 입구에 상습 침수를 알리는 푯말이 걸려 있다. 옛 문척교 앞으로 새 문척교가 보인다.

구례군은 '다리가 섬진강 제방보다 낮게 설치돼 있어 부유물 등이 걸렸고, 하천 설계 기준상 계획 홍수위보다 교량이 낮아 범람으로 이어졌다'며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철거를 요청했다. 이에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해 3월 옛 문척교 철거 계획을 수립, 예산을 확보, 업체를 선정해 지난 10월 철거키로 했다.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주민들은 느닷없는 다리 철거 소식에 분노했다.

주민들은 수해 원인을 옛 문척교 때문이라고 떠넘긴 것과 구례 군수의 '철거 철회' 약속 말바꾸기 등을 이유로 반발하며 (구)문척교 보존을 위한 구례군민 대책위원회(이하 문척교 대책위)를 꾸렸다. 군의회도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문척교 대책위는 "옛 문척교는 2020년 수해와 상관 없이 자주 침수됐었다. 당시 수해의 원인은 이 다리 때문이 아니라 댐 수량을 조절하지 못한 탓"이라며 "이 다리는 50년간 문척·간전면 주민이 구례읍 내로 오갈 수 있는 역할뿐 아니라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지역 상징물인데, 주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무작정 철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척교 대책위는 또 "올해 초 선거운동 기간 동안 구례군수가 '옛 문척교 철거를 반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지난해 철거를 결정한 상태에서 주민들을 호도했다"며 "옛 문척교를 철거하더라도 침수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은 만큼 철거 결정을 철회하고 존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례군은 교각 하부의 파괴와 부식이 심각하고 홍수위보다 낮은 잠수교인데다 10m마다 설치된 교량 다리 간격이 좁아 부유물이 자주 걸려 홍수에 취약하다는 점 등을 들어 철거가 불가피하다고 피력했다.

구례군 옛 문척교 교각 모습. 좁은 간격의 교각에 부유물들이 걸려 있다.

구례군 관계자는 "옛 문척교는 50년이 지나면서 현재의 '100년 빈도의 홍수 국가 하천 설계 기준'에 맞지 않다. 당시에는 교각 간격이 10m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70m로 넓어졌다. 교각 간격이 좁은 탓에 부유물이 걸려 흐름이 정체된다. 이 때문에 범람이 잦은 것"이라며 "'다리 보존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은 군수로서 건의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지만 지자체가 국가 정책에 반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다리를 대신해 현 위치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새 보도교를 설치키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 역시 주민들이 거부했다. 마을 노인들이 타는 전동 휠체어 진입이 어려운 데다 마을 생활권과도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구례군은 현 위치에 보도교를 설치하겠다고 재차 약속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박정선 문척교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옛 문척교 철거의 당위성을 주민의 안전에 두고 있어 무작정 반대할 수는 없지만, 철거 여부는 주민들의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특히 군수의 여러 번에 걸친 입장 변화는 군 행정의 신뢰도를 떨어트렸다. 일방적인 추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구례=오인석기자 gunguck@mdilbo.com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2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