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과와 화해는 진실한 고백에 의한 진상규명에서부터 시작돼야

@김준 광주전남 추모연대 사무국장 입력 2023.05.03. 18:11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인식한 첫 기억은 무척이나 강렬하게 남아있다. 처음 본 5·18 당시의 자료화면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의 행위라고는 볼 수 없었고, 일상을 보내고 있던 시민들에게 이루어졌던 무차별적인 폭력과 학살에 나 스스로가 노출된 것만 같았다.

그날의 기억이 더욱 생생한 이유가 또 있다. 옆에 계셨던 아버지는 그날 화면 속의 군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셨다. 5·18이 있기 바로 전까지 11공수 지휘관 중 한 명이었고 5·18 민중항쟁이 진압되고 난 다음 해 다시 11공수로 복귀한 아버지는 계엄군으로 투입되었던 부하들로부터 아무런 죄책감 없는 무용담처럼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다. 지금은 세상을 뜬 어떤 부사관으로부터는 1981년 광주교도소로 암매장한 시신을 찾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매년 5월 17일이면 전야제 참석을 위해 학교에서 금남로까지 행진을 했다. 80년 5월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였지만 행진하면서 외쳤던 구호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었다.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지)에서 방문자들을 대상으로 안내·해설을 하고 있는 지금, 대학 시절로부터 20여 년이 다시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묘역의 행방불명자 유영봉안소 앞에 서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망월동에는 오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열사들을 비롯해 직·간접적으로 5·18의 영향을 받아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돌아가신 열사들이 묻혀있고 묻히고 있다. 망월동은 그들과 함께 청춘을 바쳤던 많은 이들이, 그리고 광주에서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광주시민들이 사랑하는 공간이고 그렇기에 계속해서 찾는 공간이다.이것이 80년 이후 광주에서 나고 자랐던 내가 5·18에 대해 기억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모것들이 곧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식 반대에 나선 이유들이기도 하다.

수년간을 무용담처럼 떠들어 댔던 당시의 계엄군들은 5월의 진실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행방불명자를 비롯해 발포명령자 등 밝혀진 진실은 없으며 처벌받은 이 하나도 없는, 그렇기 때문에 책임지는 자 하나도 없는 것이 광주의 오월이다. 어쩔 수 없는 명령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부당한 명령을 내린 대상을 상대로 싸우지 않고 오히려 양심고백을 한 동료와 희생당한 광주시민들을 대상으로 싸워왔던 것이 계엄군들이다. 그들의 모습 어디에서도 반성과 사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광주에 당당히 입성해 오히려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질서유지를 위한 노고와 희생 운운하는 것을 보면서, 시민들을 학살했던 자들의 상징인 군복과 군홧발로 국립 5·18 민주묘지를 기습참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행스럽게도 취소는 되었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80년 5월 27일 도청을 함락하고 승전가로 불렀던 '검은 베레모' 제창 계획을 보면서 그들은 진정으로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광주시민들을 분노케 하고 능욕하려 온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만 강하게 들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5월 12일, 이제는 5·18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부상자 치료를 위해 광주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동참해 귀중한 생명을 구한 공동체 정신을 기리기 위한 헌혈 행사에 참여한다고 한다. 격렬한 전쟁터에서도 하지 않는, 적십자 마크에 '헌혈'이라고 쓰여진 버스를 향해 무차별 총격과 그로 인해 당시 고 3에 불과했던 박금희 열사의 죽음을 광주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더구나 박금희 열사 죽음의 경위는 계엄군들의 자기 고백이 아닌 그 날 함께 있었던 친구의 증언을 통해 40년이 넘게 지나 겨우 밝혀졌다. 그 어린 학생으로 하여금 헌혈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었던 자들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올바른 사죄도 반성도 없이 헌혈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저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용하고 오히려 다시 한번 광주시민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으로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라면 보여주기식 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증언에 나서 오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마지막으로 오월 공법 두 단체에도 요청드린다. 5·18의 전국화와 오월정신의 계승을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오월정신을 왜곡하고 당사자들로만 한정 짓는 행위들을 멈춰 주실 것을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김준(광주전남 추모연대 사무국장,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 공동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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