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발언대- 방직공장 부지 변화에 거는 바람

@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실장 입력 2020.09.01. 15:55

익숙한 풍경은 우리에게 말을 적게 건넨다. 그래서 잊고 살 때가 많다. 임동의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높다란 담벼락과 마주친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등을 기댄 담벼락 안쪽은 공장지대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광주사람이면 누구나 이 공장의 존재를 안다. 전방과 일신방직 임동공장이 그것이다.

요즘 이들 공장부지에 대한 얘기가 많다. 공장부지가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 담벼락 뒤의 얘기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방직공장이 처음 세워진 것은 1930년대다. 공장을 세운 것은 일본회사 종연방적이었다. 흔히 '종방' 또는'가네보'란 약칭으로 불렸던 회사다. 이 회사가 왜 광주에 공장을 세운 것일까? 당시 전남도는 대형공장의 유치에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전남도는 유치조건의 하나로 임동의 공유지를 헐값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네보는 이 조건을 덥석 물고 공장을 지었다.

원래 공장부지에는 유림숲, 형무소 농장, 농사시험장이 있었다. 모두 공유지였다. 그런데 공장이 생기면서 유림숲은 훼손됐고, 형무소 농장은 지산동으로 이전했으며, 농사시험장은 농성동으로 옮겨갔다. 인구에도 변화가 있었다. 1930년대 임동 인구는 수천 명이었다. 재밌는 건 당시 임동 주민의 남녀비율 중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공장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까닭이다. 이들 여성노동자들 덕분에 공장은 순조롭게 돌아갔다.

그러나 순조롭다는 말이 진실의 전부였을까? 당시 방직공장 노동자의 삶은 말이 아니었다. 10대 소녀들은 12시간 이상의 중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렸다. 구내 기숙사에서 새우잠을 잔 뒤 다음날이면 다시 기계 앞에 섰다. 외출도 없었고 질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죽으면 양동의 발산에 버려지듯 묻혔다.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도망치다 잡히면 엄청난 매질을 당했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공장에 취직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공장은 인간사냥에 나섰다. 시골을 돌며 감언이설로 꾀어 데려왔고 납치도 서슴지 않았다. 공장은 이런 식으로 '순조롭게' 돌아갔다(정근식, "일제하 전남에서의 면업구조와 형성", 1991년).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은 줄행랑 쳤다. 그렇다고 공장가동이 중단된 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기계를 돌렸다. 미군정이 되자 공장은 전남방직공사란 이름을 갖게 됐고 이때부터 외지인들이 공장경영을 맡았다. 그 결과 생긴 것이 지금의 전방과 일신방직이다.

여기에도 비화는 많다. 1950년대 공장은 본사를 서울로 옮겼다. 지역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본사를 서울로 옮겨야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회사 측의 말을 믿고 반대를 거둬들였다.

하지만 그 보답은 처참했다. 1960년대 공장은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으로 분리됐고 전남방직은 1970년대 회사명을 '전방'으로 바꿨다. 전남방직에서 전남을 지운 것인데 동시에 호남기업이란 이미지도 지운 셈이었다. 속 쓰라진 일이었지만 지역민들은 감내했다.

기억은 소중한 자산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렇기 전에 기억은 정체성이다.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는 정체성을 잃는다. 공공의 기억이 머문 곳은 공공의 장소다. 임동의 방직공장은 사유재산이지만 동시에 광주라는 공공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어떻게든 공공성을 지닌 장소로 이어가야 할 곳이다.

물론 공장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동산 개발도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땅에 깃든 공공의 기억이 이후에도 남았으면 좋겠다. 그 터 한켠에 방직공장을 있게 한 목화 몇 포기라도 심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려주는 전시공간이라도 있었으면 싶다. 손이 빨려 들어가도 흰 광목이 만들어졌다던 방직공장의 모형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노동자들이 해방의 벅찬 가슴을 담아 세운 국기게양대 정도는 반드시 남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그곳에 살게 될 사람, 그곳을 찾게 될 사람 모두에게 방직공장의 존재, 노동자의 삶이 오롯이 기억되는 장소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고민했으면 싶다.

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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