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품격 있는 공공건축, 삶의 질 높은 도시 만든다.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20.02.27. 18:00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세계적인 컨설팅 그룹 머서(MERCER)는 세계 231개 대도시의 ‘삶의 질’을 비교한 순위를 매년 발표한다. 2019년도 1위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2위는 취리히, 3위에는 뮌헨, 밴쿠버, 오클랜드가 공동으로 올랐다. 서울은 77위, 부산은 94위다. 비엔나는 무려 10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는데 선정 이유는 안전함과 편리한 교통, 풍요로운 문화시설과 여가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환경 등이다.

요컨대 우리 도시들은 소득 수준에서는 크게 차이나지 않음에도 도시 공공 인프라가 모자라거나 후져서 삶의 질이 좋은 도시에 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개발시대, 양적 성장과 공급 위주의 정책에 치중해 온 결과다. 급한 대로 싸게 빨리 공급하려니 품격도 형편없어진다. 2013년 동아일보에서 전문가 100인에게 최고/최악의 한국 현대건축을 물었는데 공공건축물은 최악 10개 중 8개였고 최고 10개에는 하나도 들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지어지는 공공건축물은 약 4천900동이고 2017년 기준 전국에 20만 5천여동이 있다. 이 중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축물이 이토록 없다는 것은 그 동안 공공건축물은 기능과 비용 위주로만 지어져 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 우리의 도시는 번들번들하고 권위적이되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공공건축물로 가득 찬 곳이 되었고 기름지되 천박한 공간이 되고만 것이다.

1980년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대규모 공공건축 프로젝트인 ‘그랑쁘로제(Grand Project)’를 추진한다. 역사와 전통의 도시 파리에 대규모 현대적 건축물을 조화시켜 실추된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고 파리를 다시금 세계의 문화수도로 만들자는 기획이었다. 유명한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라데팡스 지구의 그랑아르쉐, 오르세 미술관, 라빌레뜨 과학 문화 복합 공간, 국립도서관 등이 이 때 태어났다.

특이한 것은 대통령이 최종 심사위원이었다는 점이다. 그 덕에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건축가 아이엠 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도 선정되었고 30세 초반의 젊은 건축가였던 도미니끄 페로의 도서관도 빛을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이들 건축물은 세계인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명소가 되었고 파리는 옛 명성을 되찾는다.

상무지구 쓰레기소각장터에 들어설 광주대표도서관 국제 설계 공모가 완료되었다. 전 세계 60개국 814팀이 응모 신청을 하여 일찍이 국제적 관심을 끌었던 이 공모에서 제출된 135개 작품 중 세르비아의 브라니슬라프 레딕의 설계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당선안은 존치하기로 한 공장동까지 품어 안은 과감한 트러스를 통해 수평적 랜드마크를 창출하고 있다.

교량 형태의 이 도서관 공간은 공공건축이 의당 가져야 할 기념비적 내부 공간감을 제공할 것이며 그 하부는 내외부가 넘나드는 새로운 공간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공모 운영위원장을 맡아 심사위원 선정과 지침서 작성을 맡았던 필자는 이 도서관이 ‘책의 성당’이 되기를 원한다고 설계 지침서에 밝혔는데 이를 충족시키는 계획안이 선정되어 누구보다 흐뭇하다.

기술과 자본, 배우 등 수많은 요소가 필요하지만 영화가 결국은 감독의 작품이듯 건축 또한 전적으로 설계자인 건축가의 작품이다. 그렇기에 훌륭한 건축가를 선정하는 일이 좋은 건축을 얻는 첩경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간 우리나라 공공건축은 명목적인 공정성에만 치중하느라 실력 있는 세계건축가들이 외면하는 동네이어 왔다. 금번 이런 관행을 극복하여 국제적인 관심을 얻고 더구나 해외 건축가를 당선자로 뽑은 일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광주는 진정 좋은 건축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세계에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폐광촌이던 스페인의 빌바오는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러 오는 100만 명의 관광객으로 도시가 회생한 경우다. 인구 3천900명의 일본의 작은 섬 나오시마는 방문객이 연간 20만 명이다. 모두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을 보러 오는 사람이다. 작은 공공건축물이 지역과 도시를 살린 사례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광주대표도서관이 광주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꼭 찾아야 할 도시 광주가 되게 하는 시발 프로젝트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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