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다음 소희의 다음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입력 2023.02.21. 14:44

최근 영화 '다음 소희'가 화제다. 이 영화는 2017년 1월 전북 전주시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이 대기업 통신회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지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모든 걸 숫자로만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실적압박과 해지방어, 욕받이 부서라는 기이한 부서에 배정받은 청소년 노동자에게 첫 일터에서의 부조리는 사회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은 주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졸업 후 바로 일터로 향한다. 그렇기에 재학생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은 필수적이다.

지난해 11월 광주청년유니온은 광주 내 특성화고등학교 축제 날 노동상담 부스를 운영한 바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부스에 들렀고 아르바이트 실태조사도 함께 진행했다.

'주휴수당이 뭐예요?' '계약서는 안썼구요. 부모님 동의서만 가져오라고 했어요'

'손님이 협박을 했는데 짤릴까봐 사장님한테 말 못 했어요' '근로계약서는 나눠가져야 하는 거예요? 몰랐는데'.

부스를 운영하며 받은 질문들이다. 다른 계열의 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고 일터로 일찍 나가는 청소년들이 많은 특성화고 임에도 기초 노동법 또한 모르는 게 실정이다. 매년 1회 청년층 최저임금 실태조사를 할때도 매번 비슷한 질문들이 나온다. 학교에서 노동권, 노동법 기초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성인이 돼서도 돈 떼이는 게 일상이다.

현장실습 제도는 1963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산업교육진흥법을 제정하면서 도입됐다. 이후 교육보다는 산업·경제정책의 필요에 따라 '학생 인력'을 활용하는 목적으로 이용됐다. 2005년 실습생 사망 사고 뒤 참여정부는 이듬해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통해 사실상 업체 파견형 실습을 폐지했다.

하지만 2008년 4월 자율화 명목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현장실습을 부활시켰다. 무리한 취업률 목표치를 제시하며 학교를 압박했고, 목표치 미달학교 통폐합 계획까지 내놓았다. 모든 게 숫자로 치환되는 상황에서 오로지 실적률만이 현장의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책임 묻기 어려운 구조' 지금 시행되는 현장실습제도가 가진 가장 큰 문제다.

현장실습생들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적용되는 작업중지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위험한 업무를 거부할 권리가 없기에 산재사망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교육당국이 제도정비에 나섰으나 역부족이다. 전국 시·도 교육청 가운데 서울·부산·인천·광주·울산·세종·경기·전남 등 전국 8개 교육청은 현장실습 조례를 두고 있지만, 학생의 작업 거부권을 명시한 곳은 서울과 울산 등 2곳뿐이이다.

국회 또한 ▲공공기관 실습 확대 ▲감독관 배치 ▲전담 노무사 지정 등의 내용을 담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이 13건 발의 돼있으나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에 있다.

광주 지역 13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노동인권 수업을 받는 학교는 5곳에 불과하다. 여기에 선택교과로 편성돼 있기에 수업시수도 적으며 특성화고를 제외한 학교들에서는 아예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2019년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조례가 제정되면서 의무화를 못 박았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노동자도, 학습자도 아닌 애매모호한 경계에 청소년을 위치시키는 현장실습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노동권은 고사하고 사실상 학습권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제도가 왜 계속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진로와 관련해 취업 및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기술 및 태도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한 본 취지에 한해서 제도가 운영돼야 한다면, 적어도 노동인권교육이 교육현장에 제대로 안착돼야 한다.

아울러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 등의 법 제도 정비를 통한 대책마련을 강구해야 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 14.9%(3천865명)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 하고 있고,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부터 중대재해법의 적용 제외 사업장이다. 현장실습생의 노동권 및 건강권 보장, 청소년 노동기본권에 대해 직업교육 과정에서 이를 폭넓게 다뤄야 한다.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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