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체험형 '공공 작품' 세운 포항···품격·경쟁력 높아졌네

입력 2022.11.16. 11:29 이삼섭 기자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⑤포항 스페이스워크
포스코 기부 국내 최대 공공미술
"돈내도 아깝지 않다" 호평 가득
개장 1년 안돼 방문객 100만 명
기업·지역 상생 '모범 답안' 제시
"차별적 작품 제작에 손 모아야"
경북 포항 환호공원 내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에서 방문객들이 작품을 즐기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자 ⑤포스페이스워크

지난해 들어선 체험형 공공미술에 포항 전역이 들썩이고 있다. 포항에 위치한 세계적인 철강기업 포스코가 지역에 기부한 높이 55m, 길이 333m에 360도 회전을 이루는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가 바로 그것이다. 스페이스 워크는 우주선을 벗어나 우주를 유영 혹은 걷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높이 떠 있는 곡선 형태의 작품을 걷는 행위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경험이다.

단일 공공미술로는 국내 최대 크기인 스페이스 워크는 단지 시각적 작품이 아닌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 게 특징으로, 작품과 놀이시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내며 국내 공공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지역에 소재한 기업의 '공공미술을 통한 지역 상생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예향의 도시를 자평하는 광주를 비롯해 중소도시가 주목하고 있다.

◆공공미술 위를 걷는 구름 인파

"이거 보려고 여기 왔어요. 진짜 좋습니다. 무섭지만 시원하고 확 트인 시야가 너무 좋아요."

지난 주말 포항 북구 환호공원 내 체험형 공공미술인 스페이스 워크에서 만난 한 관광객은 기대보다 훨씬 좋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주말을 맞아 가장 뜨거운 랜드마크로 등극한 스페이스 워크를 체험하러 전국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했다. 흡사 롤러코스터 모양과도 같은 스페이스 워크에는 이미 수백여명이 아찔한 높이에서 공중 위를 걸으며 짜릿한 경험을 하는 한편 대기줄에는 수십여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하늘 방향으로 쳐다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스페이스 워크는 길이가 333m에 계단 개수만도 717개다. 철로 그려낸 우아한 곡선은 보는 그 자체로도 황홀한 경험을 선사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기둥부터 계단까지 구조물 전체가 철제로 된 탓에 흔들거림이 있었다. 계단에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경우 흔들림이 심해 걱정될 정도였지만, 이내 공중에서 바라본 주변의 풍경에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환호공원 전체는 물론 바로 앞 영일만에서 펼쳐지는 바다와 포항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서울에서 왔다는 40대 남성은 "전국의 스카이워크를 여러 군데 가보았지만 포항 스페이스 워크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최고"라며 "높은 위치와 바람에 흔들리는 짜릿함,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시야에 가슴이 뻥 뚫린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온 20대 여성은 "롤러코스터를 걸어서 가는 느낌"이라며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에 포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감격했다.

포항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 위에서 본 영일만 전경. 영일만과 포스코 공장이 보인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생기자 마자 관광명소로 등극

스페이스 워크는 지난해 11월 포항에 본사를 둔 포스코가 제작해 포항시에 기부한 공공미술 작품이다. 국내 최대,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조형물로 단숨에 지역을 넘어 국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 명소로 등극했다.

개장 7주만에 전국에서 11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으며, 개장 1년도 안 돼 방문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 관광 글로벌 광고의 촬영지'로 뽑힐 정도다.

단순 철제물로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은 세계적인 독일 건축가 겸 설치미술가인 하이케 무터, 울리히 켄츠 부부가 설계했다. 두 건축가 부부는 앞서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뒤스부르크 앵거공원 내에 만든 '타이거 앤드 터틀 매직 마운틴'(Tiger & Turtle - Magic Mountain)을 본 따 포항에 만든 것이다.

이에 포스코의 시공 기술이 더해지면서 원작 대비 더 큰 규모로,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수용인원이 40여명에 불과한 원작과 달리 최대 150여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다. 특히 설치 장소가 해안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부식에 강한 재료로 제작했고, 지진과 강풍에 대비한 설계를 하는등 안전을 최우선했다.

무엇보다 줄을 서서 봐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음에도 공공미술 특성상 무료로 개방돼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돈을 내서 들어와도 아깝지 않은 곳"이라고 평가했다.

작품성과 공공성, 오락성을 모두 사로잡은 스페이스 워크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공간문화대상' 대상에 선정됐다. 지역 공원에서 지속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다. 특히 스페이스 워크의 공간 가치 실현과 독창적인 디자인, 예술성, 완성도 등을 높이 샀다.

◆지역과 기업이 상생하는 모범 사례

스페이스 워크는 지난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지역민들의 경제난, 상실감 등을 위로하기 위해 포스코가 110여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한 작품이다. 2년 7개월 공사 끝에 지난해 완공했으며 무상으로 포항시에 기증하며 기업과 지역이 상생하는 모범 사례로 우뚝 섰다.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심사위원회도 "포스코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포항의 훌륭한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뤘고 시민의 많은 사랑을 받아 기업의 좋은 사회 환원의 본보기가 됐다"고 평가할 정도다. 스페이스 워크를 통한 포스코의 상생은 환호공원을 대한민국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했다.

최정우 회장은 제막식 당시 "포스코와 포항시의 상생, 화합을 상징하는 조형물 스페이스 워크가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포스코의 체험형 공공미술 기부 사례는 기업의 문화 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의미하는 '메세나'(Mecenat)의 흐름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블랙홀 현상으로 지방소멸이 가속화되고, 덩달아 지방의 활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각 지자체는 공공미술을 통한 지역민의 정주여건을 높이는 한편 관광객을 끌어들여 도시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지자체의 재정여건과 공공주도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미술 위주의 메세나를 펼치던 기업이 공공미술을 통한 메세나를 할 경우 '더 강력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천의 대표적 구도심인 중구 해안동에서 이뤄진 구도심 재생 사업인 '인천아트플랫폼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인천의 중견기업들이 공공미술 제작·기부에 참여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광주에서는 TG영무건설그룹이 메세나의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TG영무건설그룹 차원뿐만 아니라 박헌택 그룹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광주 대인동에 복합문화공간 '김냇과'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각각 양동과 치평동에 '김냇과2', '김냇과3' 등을 설립했다.

포항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 건축가가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뒤스부르크 앵거공원 내에 만든 '타이거 앤드 터틀 매직 마운틴'(Tiger & Turtle - Magic Mountain) 뉴시스

◆지역 색깔 고스란히 담아낸 수작

무엇보다 포항 스페이스 워크가 각광받는 이유는 제철도시라는 포항의 색깔을 그대로 담아낸 공공미술이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워크에서 만난 한 관광객은 "많은 지자체들이 출렁다리, 케이블카 등을 만들고 있는데 포항에 등장한 철로 만든 시설이 이색적이면서도 포항답다고 느꼈다"고 호평했다.

실제 작품 콘셉트는 포항시와 포스코가 하나가 돼 새로운 100년을 함께할 지속가능한 발전과 상생의 미래를 상징한다. 철의 도시 포항을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작가와 지역 건축가, 전문가, 공무원 등이 협업한 결과로 탄생했다.

지난 2019년 9월 작가를 선정한 후 작가가 수차례 포항을 방문해 머무르면서 포항 시장과 포스코 관계자, 포항시의원, 포항예총회장, 한동대 교수 등을 만났다. 또한 1차 디자인 8개를 두고 또다시 포항의 색깔과 지역의 미래와 맞는 작품을 선택하기 위해 수차례 자문위원회와 시민위원회까지 연 것이 현재의 극찬 받는 작품으로 연결된 비결로 꼽힌다.

이는 광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것으로 보인다. 광주의 경우 공공미술이 하나의 주력 콘텐츠다. 광주의 공공미술을 상징하는 '광주폴리'에 더해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미디어 아트' 작품도 늘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킬러 콘텐츠'가 없는 상태다. 특히 광주 폴리의 경우 본래 목적과 달리 '작가주의'와 작품의 '수'에 치우치면서 시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광주지역의 한 문화계 종사자는 "광주에 적지 않은 공공미술이 있지만 대부분 시각적 경험을 주는 데 그치고 규모 또한 작다"며 "공공이 민간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공공미술을 만들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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