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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신비로운 청빛이 찾아오면 외로움이 슬그머니 곁에 앉는다

입력 2021.02.18. 15:08 수정 2021.02.25. 18:05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62>조지아를 찾은 러시아 작가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5)
한희원 작 '하얀 나무'

하얀 눈이 쌓여있어요

동백꽃은 붉은 와인이 되어 흐르고

땅에 떨어진 순백의 매화 꽃잎에

흰 눈은 쌓이고 쌓여

그리움은 묻혀 갑니다

겨울에 들려오는

브람스 첼로의 깊은 저음

바람에 휘날리던 하얀 눈

얼음같이 차가운 심장에 누운다

낮은 첼로의 음

참, 따뜻하다

이 늦겨울

누군가 기다림에 지친

막다른 영혼위에 눈은 내리고

첼로의 아침은 나를 안아준다

흰 눈

끝없이 내린다

(한희원의 시 '늦겨울, 늦은 눈'- 전문)

혼자 맞이하는 새벽은 우울한 고독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밤새 뒤척이다가 든 깊은 쪽잠. 잠깐이지만 영혼은 꿈에 시달린다. 먼지 묻은 커튼 사이로 형언할 수 없이 신비로운 청빛이 찾아오면 의식 속에서 사라졌던 외로움이 슬그머니 곁에 와 앉는다. 혼자 맞이하는 봄날 새벽의 아름다움이 농익어서 안타깝고 속상하다. 맑디맑은 청빛의 눈빛이 송곳이 되어 아프게 파고든다.

새벽에 쓴 시는 고요히 침묵하고 있던 영혼을 상심하게도 하고 쓰담쓰담 치유해주기도 한다. 톨스토이 레프 리콜라예비치(1828~1910). 이 위대한 러시아 작가가 맞이했던 새벽은 어떠했을까. 어둠을 뒤로 하고 서서히 햇살을 맞이하는 숨 막히는 침묵이 어쩌면 톨스토이가 꿈꾸던 세상과 맞닿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톨스토이는 1847년 광대한 영지 아스나야 폴랴나를 상속받고 농지를 경영하며 비참한 농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톨스토이 어머니는 러시아의 귀족 집안인 발콘스키 가문 출신이다. 데카브리스트의 주동자였던 세르게이 발콘스키 공작이 외가 쪽으로 아저씨뻘이 된다. 톨스토이는 태생적으로 데카브리스트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에 관한 소설을 구상하며 당대의 역사를 연구했다. 1825년 12월 혁명의 뿌리는 1812년 나폴레옹 전쟁에 기인한다. 훗날 데카브리스트로 활약했던 젊은 장교 대부분이 나폴레옹 전쟁 당시 서유럽의 정치와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비록 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찾으려 했던 인간 본연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톨스토이에 의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1856년부터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완성한 이 작품이 바로 '전쟁과 평화'이다.

톨스토이가 젊었을 때 농민개혁이 실패한다. 그 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며 도박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된다. 톨스토이는 이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을 따라 1851년 카프카스전쟁에 자원입대 한다. 그는 이곳에서 4년간 복무한다. 톨스토이의 초기작 대부분이 이 시기에 쓰여 졌다. 그의 데뷔작인 '유년시절'은 카프카스에서 쓰여 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출판사 현대인으로 보내어 출간된다.

톨스토이는 생전에 푸시킨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푸시킨의 '코카서스의 죄수'(1820년 작)를 모티브로 삼아 쓴 '코카서스의 죄수'를 코카서스를 떠나 20년 뒤인 1872년에서야 출간된다. 또 칠십대의 톨스토이가 죽음을 예감하면서 쓴 그의 마지막 작품인 '하지 무라트'도 카프카스의 진실되고 용감했던 전사에게 바친 글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던 글들이 코카서스와 관련돼 있다. 그래서 이곳은 톨스토이의 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가 없다.

소련의 대문호 막심 고리키(1868~1936) 또한 조지아에서 처음으로 문학을 맞이했다. 1891년 혁명 서클에 가입하고 감옥생활을 한 후 고리키는 고향인 니즈니노브고로드를 떠나 그 해 가을 트빌리시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는 트빌리시에서 그의 처녀작인 '마카르추드라'를 발표한다. 고리키는 이곳의 장엄한 산맥과 사람들의 낭만적인 기질이 자신을 작가의 삶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고백한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떠났지만 지금도 조지아의 산맥과 들과 강이 끝없는 서사시를 읊조린다.

트빌리시를 걷다보면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영혼이 가난했던 젊은 톨스토이와 마주할 것만 같다. 그와 마주앉아 독한 차차를 마시며 생의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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