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국민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하)
먼지 묻은 시계바늘과 가을 비
미워했던 사람들을 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픈 날이네
친구들 잘 있는가
가을비가 폭풍우처럼 내리네
마지막 남은 잎새까지
거리에 떨어져 비에 젖어
바싹 붙어있는 모양이
내 모습 같네
삼겹살에 쓴 소주 한잔이 그립고
바싹 구운 김치전에 막걸리 한사발이 그립고 그립네
그럴 때는 이렇게 속절없이 내리는
속없는 가을비가 안주로는 제격이네
옆자리에
그리운 친구들이 있으면
더 좋고
이름 없는 무명초들이 수없이 지나간 주막에 앉아
비에 젖어가는 흐릿한 창밖 가로등을 보며
홀로 들이킨 술 한 잔이
미련 없이 떨어지는 동백꽃보다 더 아름답네
사는 게 별건가
시를 떠들고 철학을 논하는 게
오늘 밤 술 한 잔보다
쓸쓸하고 아름답지 않겠지
먼지 묻은 시계바늘이
내 인생같이 흐르지만
가을 비 보며
눈물이 흐를 수 있어 좋네
미워했던 마음을 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가을 어느 날이네
친구들 어디 있는지
보고싶네 -한희원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 그는 아주 오래 전 무슨 연유로 방대한 민족서사시를 남겼을까. 그가 쓴 '호랑이 가죽을 두른 용사'는 조지아 정신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조지아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많은 정신적 영향을 끼쳤다. 주변국의 문화를 언급해 이웃 나라의 지식인들이 이 시를 배우고 읽었다. 민족과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루스타벨리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 '호랑이 가죽을 두른 용사'에는 당대의 역사와 문화, 예술, 사랑, 그리고 종교를 섭렵한 시인의 감성이 절절히 녹아 있다. 단문으로 이어가다 기나긴 장문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마치 작은 시냇물이 모여 큰 강이 되어 흐르듯 시가 유려하고 도도하다.
쇼타 루스타벨리는 12세기 말부터 조지아의 전성기를 이룬 타마르 여왕(재위 1184~1212년) 시대의 인물이다. 타마르 여왕은 1173년부터 부왕인 게오르기 3세와 공동으로 국가를 통치하였다. 부왕이 죽자 반대 세력의 저항에 직면했지만 그녀는 반대세력을 지혜롭게 제압한다. 그런 후 셀주크와 비잔티움 제국이 쇠퇴하자 뛰어난 외교술과 군사력으로 조지아의 영토를 확장하며 영향력 또한 확대했다. 조지아 역사에서 타마르 여왕은 가장 뛰어난 군주로 추앙되며 조지아 정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조지아에서 매년 5월 14일은 타마르 성일로 기념한다. (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산책, 문예림, 2018, 98쪽)
쇼타 루스타벨리는 여왕의 재위 기간에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 십자가 수도원에 그려진 루스타벨리의 초상화를 보면 품위가 느껴지는 고관의 옷차림을 하고 있다. 문헌에서도 메처치레투쿠후트세시(mechurchletukhutsesi)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중세 조지아에서 왕실 재무를 담당한 수상을 뜻한다. 아마 그가 국가의 중요한 책무를 담당한 고관이었기에 이런 방대한 역사적 서술이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루스타벨리는 말년에 수도승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타마르 여왕에 대한 비극적 사랑으로 조지아에서 추방되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는 전혀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루스타벨리가 말년에 조국을 떠난 이유는 몽골의 침입 때문이라고 한다.
쇼타 루스타벨리의 '호랑이 가죽을 두른 용사'의 사본은 영국에 의해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물 유산에 추천되어 2013년에 세계 기록물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추천서 요약본에 기술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선 이 작품은 코카서스와 중동지역 전체에 걸쳐 일어난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변화에 의해 발생한 조지아, 동양, 유럽의 문화적 전통을 훌륭하게 배합하였다. 바로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이 작품의 중요성은 한 민족이나 국가의 범위를 뛰어넘어 세계문화유산에 해당된다. 두 번째로 이 작품은 왕족에서 시작하여 상인, 농민 등 중세의 여러 사회계층의 생활양식, 전통, 특징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다음으로 《호랑이 가죽을 두른 용사》는 신플라톤(neo-Platonic)적 사고의 발전의 정점과 인간의 본성, 우정, 사랑, 평등, 자유를 위한 투쟁에 대한 찬가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원고는 필적(calligraphy), 장식화(decorations), 세밀화(mimiatures) 등의 미적 가치도 뛰어나다.
'호랑이 가죽을 두른 용사'. 이 위대한 조지아 민족 대서사시는 조지아인의 의식 속에 스며들어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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