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바투미' (상)
그리움이 짙어져서 영혼이 점차 말라가던 사람이 바다에 가면 바다는 이렇게 말해준다. "나는 수 만년 동안 그리움을 채워가는 중이야"라고. 지평선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발끝을 적시면 그리움을 전해주는 그 차가운 촉감이 느껴진다. 때로는 말없는 침묵으로, 어느 날은 견딜 수 없어 한꺼번에 토해내는 굉음으로 바다가 들려주는 지난한 이야기들.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 무렵 완행버스에 몸을 싣고 남해를 간 적이 있다.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 해안을 타고 달리다 낮은 언덕을 넘어가면 이윽고 남해의 끝 미조포구에 다다른다. 포구에서 세상의 모든 작은 눈물이 내려앉고 있었다. 작은 배를 만드는 맞은편 산 위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해안에는 출항을 기다리는 배들과 가로등이 구부렁한 모습으로 고개 인사를 하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트빌리시 어느 허름한 골목길에서 블루스 블루스를 연주하는 노인의 모습이다.
가로등에 기대어 귀에서 어른거리는 색소폰 소리에 취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별은 지상의 일에는 하등 관계없다는 듯이 짙은 밤하늘을 떠돌았다. 바람은 소리 없이 마을 지붕에 내려앉아 슬그머니 몸을 감추었다. 막차를 타고 섬을 떠나며 낡은 수첩에 시를 끄적거렸다.
조지아는 바다가 귀한 나라이다. 삼면이 북 코카서스 산맥과 남 코카서스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러시아,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바다를 만나기가 어렵다.
서부방향의 흑해 연안으로 가야 비로소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해안은 조지아 동부지역에 위치한 수도 트빌리시에서도 거리가 멀다.
흑해와 맞닿아 있는 조지아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는 남서부 쪽에 있는 바투미(Batumi)이다. 바투미는 남쪽 터키 국경에서 1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육로를 통해서도 터키를 갈 수 있다.
바투미는 조지아 여느 곳에서든 보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산악 지역의 고산과 초원, 석조로 지은 오래된 정교회 등 시간이 정지된 듯한 풍경이 조지아의 전형적인 모습인 반면 바투미는 현대식 유명 호텔과 흑해 해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곳곳에 조성된 조각품과 건축 기념물이 즐비하여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현대로 들어선 느낌이다. 휴양도시답게 카지노나 레스토랑, 독특한 미를 갖춘 카페들이 모여 있어 또 다른 여행의 시간 속으로 들어선 느낌이 든다.
험준한 산악 지역을 다녀온 여행객들은 가파른 도로변에서 조지아 아낙이 건네준 커피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바투미 해안가 힐튼호텔 20층에 위치한 Sky Bar Nephele 야외 테라스에 앉아 저물어가는 흑해의 일몰을 보며 마시는 커피의 깊은 맛과 향도 기억할 것이다.
이런 날은 캐리어에 넣어놓고 입지 못한 반듯한 슈트를 꺼내 입고 교양과 품위 있는 몸짓이 제격이다. 여신 같은 자태의 조지아 여인이 옆에 있으면 좋으련만.
흑해의 비릿한 바다 내음이 묻어 있는 커피를 혼자 음미하는 것도 이국의 쓸쓸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여행의 묘미이리라. 해변 바닷가 곁에 있는 호수에도 흑해를 넘어가는 노을이 와인에 취하듯 붉게 물들어간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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