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밤과 눈부신 햇살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깨었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래
생은 이런 거야'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공간 너머에서
쉰 목소리로
운명이 말을 건넸다
마음 밖의 세상에서는
꽃이 만발하고
만추가 눈부셨다
다시 어둠
다시 눈부신 날
다시 잿빛 눈물
다시 그대의 소리 내어 웃는 웃음
아! 그렇구나
생이라는 것이
(한희원의 시 '20201001' 전문)
10월이 다가오니 산빛이 달라지고 강이 흐르는 소리도 깊어진다. 5000m가 넘는 고산이 즐비한 조지아의 북부지역에 9월이 되면 벌써부터 산언덕에 있는 나무들이 눈부시게 변한다. 여름 내내 입고 있던 녹색의 기운을 버리고 짙은 노랑과 황금색으로 언덕의 운치를 지키고 있다. 햇살과 바람에 우수수 온 몸을 떨며 지상에서 마지막 향연을 즐긴다.
언젠가 9월에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를 간 적이 있다. 러시아용 카키색 미니버스를 타고 바이칼 주변의 나무숲을 달렸었다. 무리지어 산을 덮은 나무들과 공허함이 스며든 들녘에 나무 한그루가 황금색 은빛으로 홀로 서 있었다. 우리네 인간은 늙어갈수록 피부가 메마르고 거칠어진다.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점점 볼품이 없어지는데 나무는 황혼녘에 이르러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나무는 햇빛을 받으면 더 찬란해지다가 바람이 날리면 온몸을 흔들며 격렬하게 춤을 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가을의 고독을 잊고 덩달아 환희에 젖는다.
조지아 북부의 가을은 나무들이 부르는 거대한 '환희의 송가'이다. 코카서스 산맥의 서북쪽의 우쉬굴리, 메스티아. 중서부 지역 라짜의 암브롤라우리. 지금은 러시아 땅으로 귀속된 북동부의 오세티야. 그리고 카즈벡산과 스테판츠민다. 가장 북동쪽에 있는 달트로, 오말로로 이어지는 이곳 코카서스 산맥의 가을은 가을이 부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환상을 최대치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쿠타이시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조지아인들이 가장 청정하다고 말하는 트키불리, 치아투라, 암브롤라우리를 갈 수 있다. 북부 산악지역에서 흐르는 리오니 강은 산과 산을 넘어 이메레티주의 중심 도시 쿠타이시를 가로질러 흐른다. 암브롤라우리는 조지아에서 가장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정경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러시아 땅에 속해 있는 오세티야와 맞닿아 있다.
오세티야는 조지아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2008년 8월에 일어난 조지아군과 친 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1991~1992년에 일어난 전쟁으로 남오세티야는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지만 국제적으로는 조지아의 일부임을 승인 하에 봉합되어 전쟁의 씨앗이 드리워진 지역이다.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러시아 연방군은 남오세티야 지역의 러시아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참여하였다가 조지아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러시아는 조지아 전역에 공습을 시작했다. 조지아는 사실상 러시아에 항복하였으나 러시아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해 8월 12일 러시아는 공격을 종료하였고 13일에 유럽 연합 의장국인 프랑스의 중재로 평화안에 합의하였다. 14일 미국이 조지아 전쟁에 개입할 것임을 선언하자 러시아의 반발이 이어지고 16일 날 러시아가 최종적으로 평화안에 서명하였다.
2019년에 러시아 하원의원의 조지아 국회의사당 연설사건에서 비롯된 시위는 두 민족 간의 뿌리 깊은 감정에서 기인하였다. 조지아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인 암브롤라우리와 최고급 와인 '판치카라'를 생산하고 있는 이곳은 전쟁의 아픔을 겪은 현장과 이웃하고 있다. 우리는 만남과 이별이 맞물리고 행복과 불행이 언제나 맞닿아 있는 삶을 살아간다. 역사의 현장도 우리의 삶 속에서 폭발하듯이 숨죽이며 꿈틀거리고 있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