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1(월)
현재기온 23.4°c대기 좋음풍속 2.9m/s습도 37%
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44> 다비드가레자(하)

입력 2020.09.10. 17:52 수정 2020.09.10. 19:24
'피로스마니 레스토랑'
세상과 단절된 구도의 도시

가을에는 브람스를 들어요

가을에는 브람스를 들어요

낡은 추억의 뒷페이지

지워져가는 글씨를

이제는 알아볼 수 없어도

세월은 무심히 가고 온다

비에 젖어 검게 변한

아스팔트 웅덩이에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그림자 첼로의 짙은 저음으로 잠겨든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그에게 생은 자유롭고

고독했을까

그리고 그 끝은…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뒤처리는

찾아오는 가을에 맡기고

어둠이 찾아오는 느슨한

오후에 브람스를 듣는다

쥐고있던 붉은 오선지 사방으로 흩어진다

어디선가 떠도는 슬픈 사랑

가을에는 브람스를 듣는다

자유롭게,

.....이룰수없는 고독으로

(브람스피아노협주곡1번 아스케나지 연주를 들으며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는 브람스의 삶의 모토)

(한희원의 시 가을에는 브람스를 들어요- 전문)

'거센 바람 속의 이방인'

'고립'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내포할까? 고립은 자신의 세계로 침잠하기 위한 자발적인 고립과 사회적 혹은 물리적 상황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타자에 의한 고립이 있다. 정신적인 일을 하느라 피로감이 축적되면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발적인 격리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결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함께 호흡할 때 거친 시간을 견디며 생의 족적을 남긴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고립된 생은 지독한 고독과 공허함을 동반한다.

오래 전 조지아 성직자들은 왜 속세를 떠나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바위산으로 들어가 스스로 갇혔을까? 그들이 지상의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고군분투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죽음만이 완전한 고립은 아닐는지. 고독한 기도의 산 다비드가레자!

성직자는 구도자의 길을 가면서 신과 대면하기를 소망한다. 신을 숭배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예술가들도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타인들과 거리를 둔다. 알 수 없는 영혼의 심연을 만나는 시간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예수도 가장 힘든 결단의 시간에는 제자들을 물리고 홀로 기도했다.

베토벤은 나무숲을 거닐며 악상을 떠올렸고, 철학자 융은 외출을 삼간 채 집에서 몇 달 씩 단순한 삶을 살며 새로운 정신세계를 만났다. 고흐도 마지막 생애를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사람들을 피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풍경을 그렸다. 고흐는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상태에서 자연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그릴 수 있었다.

다비드가레자는 범인들과 단절된 상태에서 성직자들이 신을 만나는 구도의 장소이다. 기도처는 편안하고 따뜻하며 풍요로운 땅보다는 메마르고 삭막한 바위산이 제격일 것이다. 성직자에게 고행은 구도의 원천이 되고, 예술가들에게 고통은 창조의 뿌리이다.

다비드가레자는 10~13세기에 걸쳐 수도사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총 길이만 2km에 이르며 100여개의 동굴이 예배 처소로 이루어져 있다. 동굴의 천장과 벽에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성인과 역사적인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에 반해 성벽과 망루는 잦은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어졌다.

'사유의 계단'

다비드가레자는 1265년 몽골의 침입을 받았다. 게다가 1615년 이란의 사파위 왕조에 의해 모든 수도사들이 학살당한 비극의 도시이다. 그 때 수도사들의 필사본과 수많은 예술품들이 파괴되는 수난을 겪었다. 구소련 때는 폐쇄되어 소련군이 주둔해 군인들의 사격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다비드가레자는 조지아인들에게는 민족적인 치욕의 장소이다. 지금도 그 앙금이 남아있어 러시아와 불편한 사이이다.

다비드가레자 트레킹은 고산을 오르는 힘든 코스는 아니지만, 이웃 나라인 아제르바이잔의 국경을 넘나드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수도원이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안까지 뻗어있어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조지아에서 서로에게 필요한 땅을 교환하자는 제의를 했으나 아제르바이잔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 이 지역이 백인들의 조상인 알바니아인들이 최초로 거주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조지아인들의 영적인 성지인 다비드가레자. 오랫동안 이민족의 침략을 견뎌온 바위산이 성스러운 장소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뜨거운 열기가 숲이 없는 바위산을 달군다. 바람도 목이 탄지 쉰 소리를 낸다.

돌아오는 길에 우다브노(Udabno)마을을 지난다. 여기에 있는 오아시스클럽은 여행자들에게는 달콤한 생명수 같은 곳이다. 커피와 맥주로 고단한 몸을 순환시킨다. 침묵의 기도소리를 가득 싣고 차는 가까운 도시 시그나기를 향해 달린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srb.co.kr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