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로서 너를 본다
가장 깊숙한 언어로
너를 보는 순간
강이 거칠게 거슬러 오르다
긴 평온을 찾는다
담 아래 핀
먼지 묻은 풀꽃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지만
거추장스러운 언어가 아닌
너라고, 불러본다
겹겹이 쌓인 껍질을 벗겨내고
하나의 존재로서
너를 보는 것
그것이 비록 가난한 일 일지언정
(한희원의 시 '존재의 언어')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길이다. 귀로는 그동안 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는 과정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말끔히 잊혀진다.
어느날 문득 오래된 서랍에서 잊고 있었던 물건을 보면 불현듯 과거로의 회상에 젖어든다. 여행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또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한다.
텔라비에 갔을 때 그곳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었다. 조지아 동남쪽 카헤티 지방의 중요 도시로써 와인 주산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며칠 동안 선교사 집에서 기거하며 마주한 텔라비는 조지아의 역사와 종교,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유서 깊은 와이너리를 두루 갖춘 곳임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 집 앞으로 드넓은 평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는 높고 긴 카프카스 산맥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얀 눈이 쌓인 산봉우리가 긴 성벽처럼 서 있었다. 시그나기 성벽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산맥이 이곳에서는 한층 더 가깝게 보인다.
산맥 아래에는 알라자니(Alazani)강이 흐른다. 텔라비는 조지아 최대 와인 생산지답게 사방이 포도밭 물결이다. 텔라비 와인 때문에 사업차 방문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선교사 집 근처 호텔에서 커피를 마셨다. 조지아에는 카즈베기의 룸스 호텔처럼 소도시의 매력적인 호텔이 있다. 자동차로 잠깐 달려간 Radisson Collection Hotel은 옛 와이너리를 개조하여 만든 호텔이었다.
와이너리 특유의 벽돌과 천정은 우아한 곡선의 고전미가 그대로 살려져 있었다. 마룻바닥과 소파들은 안락하면서 독창적이고 아름다웠다. 여행자들은 피곤한 몸을 소파에 누인 채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셨다. 세월이 켜켜이 쌓이고 쌓인 건물을 헐지 않고 재사용하니 현대적인 감각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에게 정신적 안정을 누리게 해준다. 과거와 현대의 간극에서 나를 인식하고 바라본다.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인 후 호텔과 연결된 알렉산더 차브차바제 박물관(House Museum of Alexander Chavchavadze)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텔라비는 8세기부터 도시가 형성되었다. 15~17세기까지는 카헤티 왕국의 수도였다. 에레클 2세가 통치할 때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곳 알렉산더 차브차바제 박물관은 1835년에 지어졌는데 조지아의 귀족 시인 알렉산더 차브차바제의 저택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이다. 저택 안에는 당시 조지아 귀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재현해 놓았다.
갤러리와 박물관은 훌륭했다. 그렇지만 정원은 더 환상적이었다. 수백 년 된 나무숲을 거닐었더니 타향살이로 지쳤던 영혼이 서서히 안식을 찾아갔다. 훗날 조지아를 다시 오게 되면 이 정원만큼은 꼭 다시 찾으리라 마음먹었다.
텔라비 근교에서 카프카스 산맥 쪽으로 가면 깊은 산속에 크바렐리 호수(kvareli lake)가 있다. 조지아는 바다와 맞닿는 면적이 적은 나라이기에 호수를 귀히 여긴다.
호수를 찾아 한참 길을 달리는데 경비원들이 길을 막아섰다. 자연경관을 찾는 여행자에게도 이곳은 꽤 까탈스러웠다. 조지아에서 호수는 그만큼 특별하다.
기대했던 것만큼 규모가 크지 않은 호수였다. 노을이 내려앉은 숲속의 호수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호수 옆에 위치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평원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햇살을 보며 저녁식사를 했다.
텔라비에는 1천년 된 와이너리가 있는 알라베르디 대성당(Alaverdi Cathedral)이 있다. 이 대성당은 2004년까지만 해도 조지아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6세기 말에 지어진 이칼토 수도원(Ikalto Monastery)은 성 제논에 의해 지어진 학문의 성당이다.
올드 슈암타 수도원(Old Shuamta Monasteries), 뉴 슈암타 수도원(New Shuamta Monasteries)같은 역사적인 수도원을 텔라비에 오면 만날 수 있다.
텔라비 시내에 있는 공원에 올라가면 높이가 46m에 900살이나 나이를 먹은 Giant plane tree가 있다. 바람이 불면 큰 나무는 온몸을 흔들며 요동을 친다. 오랫동안 강대국의 침탈을 겪어온 조지아의 영혼도 이럴까? 나이 먹은 나무 곁에 서면 조지아의 흐느끼는 숨결이 느껴진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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