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시간을 걸으며
생의 시간 속을 걷는다
시간과 시간의 흐름 속에
침묵하고 침묵한다
강가에 서서 강이 되고
나무에 기대어 나무가 된다
바람이 밀지 않아도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짙은 밤이 아니어도
별이 어디선가 떠 있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높은 산 너머에 바람이 오고있다
이렇게 하얀 길을
나는 혼자 걷는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호흡도 없는 공간 속에서
말없이, 없이
생의 시간 속을 걷는다
(한희원)
텔라비로 가는 길은 김중호 선교사 부부와 동행했다. 선교사님과는 우연히 만났다. 트빌리시의 숙소에서 오후가 되면 그리던 그림을 접고 자바하시빌리를 어슬렁거렸다. 자바하시빌리는 낡고 오래된 가구를 파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네였다. 건물의 벽채는 수십 년 동안 방치되었는지 퇴락한 모습이었다. 좁은 인도에 늙은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서 걷기가 힘들었다. 트빌리시 거리는 바닥이 울퉁불퉁한 석조로 되어 있는 곳이 많아 보행이 불편했다. 그러다보니 몇 달 만에 신발이 다 헤지고 오래 걸으면 무릎에 통증이 자주 찾아왔다.
매일 똑같은 길을 걷다 보면 아끼느라 서랍 속에 감춰둔 보석을 발견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억 너머 아련함을 주는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철제로 주조된 대문이며 창틀,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룬 건물, 낡은 건물 사이에 있는 와이너리와 레스토랑은 하나같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작은 화랑과 마주하고, 무심코 들어간 레스토랑이나 바의 실내장식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독특한 개성이 섞여져 있어 인상 깊었다. 거창하고 세련되진 않지만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모습들이다. 어두운 수풀 속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장면이었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레스토랑 '돔(DOM)'도 그런 곳이다. 에메랄드빛이 가미된 바다색의 블루, 갈색 톤의 피아노, 낡았지만 기품 있는 철제 장식들이 어우러진 가게였다. 변두리에 있는 레스토랑치고 가격이 제법 비쌌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은 드나들지 못할 것 같은 곳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쇠잔했지만 그런 풍경들이 가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가끔 용기를 내어 혼자 '돔(DOM)'에서 스파게티나 맥주를 시켜 먹곤 했다.
김중호 선교사 부부와는 '돔(DOM)'에서 처음 만났다. 몸집 좋은 미남형의 동양인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혼잣말로 '중국 사람인가'라고 중얼거렸는데 한국 사람이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트빌리시에서 한국인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먼 타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우연히 만난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선교사님은 어릴 적 꿈이 화가였다며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다. 조지아에 와서 한국말로 나를 드러내며 말할 수 있어서 기뻤다. 비록 초면이지만 한국말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선교사님은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에서 18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는 분이다. 지금은 텔라비에서 살지만 가끔씩 트빌리시에서 며칠씩 지낸다고 한다. 고국을 떠나 이국생활을 하면서 숱한 사연이 많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텔라비 근교에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아제르바이잔에서 선교활동을 해서 조지아로 옮긴 이후에도 그들과 계속 인연을 이어가는 것 같았다. 텔라비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트빌리시에서 산길을 넘어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텔라비 입구에 도착하였다. 이곳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흐릿한 기억 속을 헤매다가 점점 선명해지며 나타나는 거리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동안 다녔던 조지아의 여러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텔라비는 러시아의 자취가 깊게 남겨져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풍경이었을까? 우연히 보게 된 제 3세계 영화 속 풍경이었을까?
수백 년 간 묵묵히 거리를 지키고 있는 플라타너스, 고흐의 그림에 등장한 모습을 한 채 걷는 사람들, 드문드문 쇠락한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들, 낮은 키의 하얀 건물, 스산한 바람결을 따라나섰다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 세월이 정지된 마을 텔라비에 드디어 들어섰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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