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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25. 흔들리는 강물, 조지아 민요 '술리코'에 몸을 싣고

입력 2020.04.29. 19:00 수정 2020.04.30. 17:05 @조덕진 moleung@gmail.com
25. 스테판츠민다까지 가는 길
'신화가 숨 쉬는 풍경'

바람이 부르는 노래

바람이 멈춘

언덕에 나는 서있네

저 먼 곳 홀로 있는 나무

바람만이 갈 수 있는

그곳까지 얼마나 가야하나

황혼을 등에 지고 길을 떠나네

나무숲을 지나 거센 강을 건너

잃어버린 노래

쉰 가슴으로 부르며 길을 떠나네

내 슬픈 기억을 담은

바람이 머무는 곳에

그대는 기다리고 있을까

훠이 훠이 쉰 노래 부르며

바라 몇 자락 주머니에 담고

길을 떠나네

사랑하는 이여 사랑하는 이여

내 곁에 머문 그대여

바람이 부르는 노래여

(한희원)


'새, 바람, 떠도는 별'


조지아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은 트빌리시에서 스테판츠민다까지 가는 길이다. 우쉬굴리에서 슈카라(Shkhara) 산까지 가는 동안 펼쳐지는 황량한 대평원의 길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슈카라 산의 빙하에서 흘러나오는 아라그비 강이 산과 산 사이를 굽이치며 흐른다. 길과 강 주변이나 낮은 언덕에는 강과 세월을 함께 한 나무들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서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강물과 나무들, 길가의 이름 모를 풀잎이 함께 춤을 추며 조지아의 민요 '술리코'를 들려주는 것 같다. 높고 낮은 산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산 아래 언덕에는 조지아의 전통가옥과 마을이 고즈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마을에서 홀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집도 있고 몇 채씩 옹기종기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서양의 먼 이국에서 한 폭의 동양화를 마주한 느낌이 든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아스라한 풍경들이 쉬지 않고 스치며 지나간다. 순간 고향을 떠난 이방인의 가슴이 저민다. 고국에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한참을 머물다 슬그머니 떠난다. 슬픈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왔다 떠나가는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쓸쓸하다. 그렇지만 추억을 가득 안고 떠나온 고향처럼 다정하고 따뜻하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라면 조지아를 떠나서도 이 풍경과 순간의 기억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트빌리시를 벗어나 7km 쯤 가면 카즈베크 고봉에서 흘러나오는 아라그비 강이 잠시 쉬었다 가는 진발리 저수지(Zhinvali Reservoir)를 볼 수 있다. 빙하가 녹아내려 만들어진 저수지의 물빛이 에메랄드빛으로 무척 아름답다. 저수지 옆에는 관광객이 호수를 보면서 쉴 수 있는 오두막 모습의 커피숍이 있고 마을 사람들이 키우는 양떼와 말들이 무리를 지어 한가로이 서 있다.


'바람의 노래'


저수지 위에는 오래 된 아나누리 성채(Ananuri Fortress)가 있다. 이 성은 13세기부터 이 지역을 통치했던 아라그리 영주의 성이다. 작은 규모의 성으로 17세기에 세워진 교회와 두 개의 성이 이 작은 고성 안에 있다. 교회 외벽에는 십자가 부조가 있으며 성 아래로 보이는 에메랄드빛의 저수지가 고성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조화를 이룬다. 성채 안의 늙은 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성벽 사이를 지나간다.

강이 굽이치며 흐르는 곳에 간혹 레스토랑과 커피를 파는 곳이 있다. 레스토랑에는 아라그비 강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으로 요리를 한다. 특별히 맛있지는 않지만 조지아의 서쪽 먼 곳에 바다가 있어 생선이 귀한 트빌리시에서는 생선 그자체가 입맛을 돋운다.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 담백한 맛이 나며 원재료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규모가 작은 오두막 커피숍에서 손으로 직접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조지아의 시골 여인이 내려주는 커피에 산내음이 가득 들어있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 산속 커피의 향기처럼 조지아의 처녀들은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부대끼며 살아서인지 묘한 인상을 주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카즈베기로 가는 산길에 있는 낡은 레스토랑에서 마신 커피의 맛과 향이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코카서스 산맥에서 두 갈래의 물줄기가 흘러나와 파사나우리(Passanauri) 지역 인근에서 합류하는데 물줄기가 특이하게도 검정과 흰색을 띄고 있다. 한 시간을 넘게 가면 멀게만 보이던 고봉이 차츰 가까워지고 길은 높은 산을 가로지르며 치고 들어간다. 러시아로 가는 화물차들이 거대한 몸을 자랑하며 줄지어 높은 산 언덕길을 안간힘을 쓰며 오른다. 여행자를 태운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는 화물차를 추월하려고 시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운전자와 탑승자 모두 긴장의 시간들이다.

그렇게 조금만 더 가면 해발 2,200m에 위치한 구다우리(Gudauri)를 지난다. 구다우리는 고봉의 산악지역이 시작되는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장이 있다. 007영화에서 스키를 타는 장면을 촬영할 정도로 아찔한 비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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