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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15. 피로스마니와의 조우

입력 2020.02.20. 17:02 @조덕진 mdeung@srb.co.kr
고단한 현실 품어안았던 작가 숨결 고스란히
거리의 화가

피로스마니의 노래

-낡고 거친 붓-

노을이 어깨를 짓누른다

붉은 노을이 그의 굵은 손가락의 주름을 타고 내려온다

녹슨 철로 먼지 묻은 담배연기

그의 눈동자 흐릿하다

무심한 눈길의 기차가 굉음을 내고 지나간다

담배연기 거칠게 춤을 추며 흩어진다

철로변 수은등 흐릿한 표정으로 부서진다

생의 아픔이 칼날처럼 난무한다

길은 가깝고 멀다

굉음이 묻은 검은 옷

지하실을 걸어내려 회색빛 전등불 아래 멈춘다

회색빛 먼지, 회색빛 전등, 회색빛 눈빛

붓을 들고 검은색을 칠한다

눈부시다 검은 물결이 흐르는 그곳

멈추는 그곳

아, 나의 사랑은 어디로 가나

붉은 장미 한 움큼 그대에게 뿌린다

떠나는 모든 것을 꽃이라 부르지 말라

눈물이라 부르지 말라

밤기차 쏜살같이 지나간다

낡고 거친 붓

지하방에 혼자 남겨있다

(한희원 ‘피로스마니의 노래’)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오직 나뿐이다.

나는 나에게 묻고 답한다. 번잡한 삶은 나라는 존재를 잊게 한다. 육체와 정신의 총합이 나인데 불현듯 내가 타인으로 느껴진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내 눈빛과 마주하기가 불편하다.

내 자신과 나누던 대화가 무르익으면 비로소 주위의 사물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미세한 움직임과 떨림에 화석처럼 굳어있던 몸이 스르르 반응을 한다. 이런 섬세한 시간을 보내다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 예전에 흘려들었던 한 음 한 음이 마치 살아있는 듯 가슴에 안겨온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발표한 후 비평가들의 혹독한 평가에 상처를 받아 심한 우울증을 겪는다. 그로 인해 삼 년 동안이나 곡을 쓰지 못하다가 심리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를 만나 극심한 우울증을 치료한다. 이후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비평가와 대중들에게 큰 찬사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그는 달 박사에게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헌정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들여다보며 고통을 경험한 예술가만이 고통을 위로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라흐마니노프에 취해 작업실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다. 오늘은 또 어디를 걸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중앙역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참을 걸어가면 조지아의 국민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1862-1918)가 살았던 집이 나온다. 처음 이 동네를 걸을 때 거리의 낡은 담벼락에 피로스마니 그림이 여기저기 걸려있어 무척 의아했었다. 나중에서야 이곳이 그가 살았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화신, 눈물의 화가, 비운의 화가 피로스마니.

피로스마니는 트빌리시 근교에 있는 카헤티 지방의 미르자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카헤티 지방은 와인의 주생산지로 시그나기와 텔라비가 속해 있다. 그런 연유로 시그나기 지방에 피로스마니 미술관이 있다.

피로스마니는 여덟 살에 아버지와 큰 형이 죽고, 두 누이는 일찍 결혼을 해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다. 열 살이 되던 1872년 홀로 트빌리시로 오게 된 그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으나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 혼자서 그림 공부를 한다. 트빌리시 역에서 철도 노동자로 일하면서 틈이 나면 시내 상점의 간판을 그리고 남은 페인트로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검은색 위주의 청회색과 암갈색 같은 어두운 색을 주로 사용했다. 가난해서 다양한 색을 마음껏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원초적 원시주의 작가라 부른다.

차츰 그림 실력을 인정받은 피로스마니는 초상화 주문을 받는다. 가난하고 외로웠던 그는 화려한 세상에서 소외된 조지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암울하게 그려진 소박화는 한국의 국민화가 박수근과 닮은 듯 다르다. 박수근은 수십 번을 덧칠하여 화강암처럼 거친 질감에 소박하고 단순한 선으로 한국성을 표현했다. 반면에 피로스마니는 어두운 색조와 원초적인 소박미로 조지아인의 삶을 그렸다.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그의 그림에서 원시성이 느껴진다. 아프리카 미술에 매료되었던 피카소가 피로스마니 그림에서 영감을 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혼이 생략된 채 숙련된 기술로만 탄생한 작품에는 감동이 적다.

피로스마니가 철도 노동자로 일을 마친 후 터벅터벅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걸어 들어갔던 지하실의 암울함과 고독함. 그의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강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화가의 고단했던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피로스마니의 그림 앞에 서면 영혼이 속살거려 쉽사리 걸음을 옮길 수 없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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