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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안식년 트빌리시 편지<11>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상)

입력 2020.01.16. 11:11 조덕진 기자
쓸쓸한 언덕 저편 홀로 핀 붉은 장미
두근두근 가슴으로 물었네 혹시 그대가 술리코
대지의 노래

그 해 거리

그 해 거리에는

참혹할 만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위로 눈이 끝없이 내렸다

침묵 위로 침묵이 내리니

뼈만 남은 가지가 휘청거렸다

침묵을 견디어 낸 것은 그나마

몇 집 사이로 보이는 불빛의 따스함과 그 불빛을 담고 있는

너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등불이 너의 눈동자 안에 켜 있었고

지상의 불빛보다 깊고 영롱하게 빛났다

너의 눈동자를 생각하는 일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침묵의 날은 끝없이 이어졌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 해 거리를 떠나

들녘을 가로 지르는 여행을 떠났다

떠나간 여인을 닮은 별이

떠남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기억은 고즈넉하고 슬프고 아름답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기억은 아름다울까

나이가 들어서 여행하는 것은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워나가는 일이다

그동안 간직한 것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나는 일이다

가슴에 그려진 그림을 하나씩 지워나갈 때

지움이 끝까지 가면

남는 건 온전한 대지

그곳에 아무도 모르게 들풀 하나 심을 수 있으려나

여행을 마치고 침묵의 거리로 돌아왔다

낯설은 귀향이었다

죽은 듯 서있는 나무에 푸르고 작은 잎들이 돋아났다

늙은 나무에 달린 여린 잎에

햇살이 내릴 때는

햇살도 숨을 죽여 천천히 내린다

늙은 나무와 여린 잎과 햇살

아! 생명의 유희를 본다

참혹한 침묵과 새로운 생명이 함께 있고

살아있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함께 있다

살다보면 채우고 지우는 일이 다 함께 가는 일이다

비는 오지 않는데 먼데서 천둥이 친다

그런 날이 있다

(한희원 작 ‘그 해 거리’)

오래 전 서부 티베트의 영산 카일라스로 순례길을 떠났다. 순례길을 마치고 내려오면 산을 감싸고 흐르는 개울을 만난다.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들녘 사이로 흐르는 작은 강. 언덕에 서 있는 사원들. 고원의 언덕을 지키는 목동들. 평생을 산언덕에서 양을 치며 살아가는 목동에게 철학과 시를 논할 필요는 없다. 그의 눈빛이 시이고 그의 영혼이 철학이다. 높은 산은 영혼의 신비와 교감하게 한다.

조지아는 유럽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많은 나라이다. 조지아를 찾았던 이유도 높은 산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와 국경을 이룬 북쪽에는 5000미터가 넘는 세 개의 봉우리가 존재하는 대 코카서스 산맥이 펼쳐진다. 대 코카서스 산맥의 서북쪽은 스바네티 지역으로 가장 험한 곳이다. 쉬카라봉(5193m), 강가봉(5059m), 동쪽의 카즈베기봉(5047m), 쇼타 루스타벨리봉(4860m), 등의 고산이 위용을 드러내며 즐비하게 서있다. 코카서스 산맥에는 아름답고 비교적 험준하지 않은 트레킹 코스가 많다. 멀리서 고봉을 바라보며 마을과 마을을 이어가는 길들은 야산의 평평한 길들로 이루어져 있어 천천히 걸으며 사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저녁 무렵 마을에 도착하면 순박한 산악지역의 조지아 사람들이 내놓는 챠챠와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트레킹을 마치고 피곤에 지친 몸을 풀기 위해 독한 챠챠를 주는 대로 받아 마시면 취하기 십상이다. 조지아 사람들은 술이 센 편이다.

스바네티의 중심도시에는 조지아의 스위스라 불리는 메스티아가 있다. 여기는 해발 1400미터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이 마을은 1000년 전 전쟁에 대비하여 만든 망루 코쉬키가 집집마다 있어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멀리 설산과 푸른 언덕 사이로 퇴색한 벽돌의 망루들은 천 년 넘게 자연과 어우러져 묘한 풍경을 연출하며 사람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돌리게 한다. 이런 독특한 경관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한다.

메스티아에서 남동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은 마을 우쉬굴리가 있다. 해발 2050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마을이다. 1년 중 6개월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마을 저편 아스라한 곳에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쉬카라봉(5193m)이 내려다보고 있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에서 50km도 안 되는 곳이지만 만년설에서부터 흐르는 강을 끼고 도는 험준한 절벽 길을 2시간 이상을 가야 만날 수 있다.

9월에 음악을 하는 친구 박문옥(‘직녀에게’ 작곡자)과 화가 송기전이 찾아왔다. 3월부터 혼자 지내다 친구들이 오니 마음에 쌓인 우울함이 조금은 걷힌다. 친구들과 함께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다 짐을 풀었다. 루스타벨리(트빌리시 중심가) 중앙 도로에서 언덕 위로 한참 오르는 곳에 있는 집이다. 과거 러시아시의 지배를 받을 때 영화감독으로 유명했던 예술가의 집으로 거실에 피아노가 있다. 아직까지 그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어서 친구들에게 소개를 해주었는데 아쉽게도 교통이 불편했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집이다.

셋이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미지의 세계는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나는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산악지역인 우쉬굴리에 동행하기로 했다. 트빌리시에서 지내면서 동경하던 곳이우쉬굴리이다. 홀로 여행하기에는 벅찬 곳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가는 행운을 잡았다. 여행하기 전 우리는 조지아의 국민 민요 술리코를 불렀다. 박문옥이 우쿨렐레를 가지고 와서 반주를 하며 한국어로 번안한 술리코를 노래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당신 무덤

나는 그만 울고 말았네

어디 있는 거니 술리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네

사다 칼체모 술리코

술리코는 전쟁이 잦았던 조지아의 슬픈 영혼을 노래한 곡이다. 19세기 조지아의 국민시인 아카키 체레텔리의 시에 노래를 붙인 술리코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 스탈린이 가장 좋아했던 애창곡이다. 스탈린은 조지아의 고리지방 출신으로 자신의 고향 사람들을 홀대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났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무덤은 찾을 수 없고,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는 시간.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떠올리며 노래를 불렀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어로 불렀던 술리코는 조지아 사람에게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박문옥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국의 여행자들이 부르는 술리코가 음악을 좋아하는 조지아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올드타운 식당에서 셋이서 화음을 넣어 술리코를 불렀더니 종업원들이 모여들면서 동영상을 찍어댔다. 게다가 서비스 음식이 푸짐하게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먼 산악지역으로의 여행을 앞둔 우리의 마음은 한참 들뜨고 있었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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