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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화가의 안식년 트빌리시 편지 <10> 김환기선생을 그리며

입력 2020.01.09. 09:05 @조덕진 mdeung@srb.co.kr
그것은 별이었고 시였고 그리움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

"지상에 떨어진 우주 광활함에 목이 메어온다

언제쯤 그 신비를 만날 수 있을까

강에 부서지는 수은등을 버리고 숙소로 돌아온다

내 모습도 흐르는 강에 부서진다"

19131963197461

김환기1913년에태어나서1963년부터

1974년까지뉴욕에서살다뇌출혈로죽다

그의나이61세였다신안군작은섬안좌도

읍동마을푸른바다블루의자궁뉴욕십일

년그는형벌이라했다고독그리움그리움

을잊어버리려걷고또걸었다그러다자고

나면그리고또그렸다그리움에사무쳐그

리움을잊기위해수만번점을찍어그리움

은별이되었다사무치고절실하다점점점

점점점을찍고번지고어디서무엇이되어

다시만나랴그가찾아간길그가돌아온길

(한희원 작 ‘19131963197461’)

바람이 잦아졌다. 창밖 감나무와 석류나무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다. 간혹 흔들리는 모양이 제 힘에 겨워서인지 숨죽이며 조금씩 몸을 흔든다. 페인트가 벗겨져 나가고 곳곳이 얼룩진 건너편 낡은 건물 너머로 매일 바라보는 하늘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옅은 먹물을 섞어 놓은 듯 한 구름도 하늘을 가로지르며 지나고 있다.

겹겹의 세월 속에서 자연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변하고 내가 변해가고 있다. 수백 년을 지탱해 온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숱한 사연들을 보고 견뎌왔을까? 이국의 생활에 젖어가는 나를 보면 얼굴과 신체기능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머리카락도 푸석푸석해지고 근육은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매일 느끼던 감정도 흔들리고 잊지 못할 것에 힘들어한다. 몇 십 년 밖에 안 되는 생의 시간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쓸데없는 욕망에 빠진다.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덧 늙어가는 자신을 본다.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한 것은 없을 진데 완전한 깨달음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사람들 속에서 자유를 찾아왔는데 종일 침묵 속에 지낸다. 말을 안 하니 말이 점점 어눌해진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럽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바닥에 검은 천을 깔고 벽에 온통 비닐을 붙여놓았다. 숙소도 나와 닮아간다. 본향을 잃어버리고 떠나는 여행.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이국의 여행길.

자기 성찰을 위해 고독과 외로움을 항해한 화가 중 수화 김환기(1913-1974)가 있다. 김환기는 1913년 전남 신안군 안좌면 읍동(기좌도)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한국 최초의 근대 미술유파인 신사실파를 결성했다. 한국 근대화가 중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가교역할을 한 작가이다. 선비 같은 성품에 학 같은 모습을 지닌 기품 있는 작가였다. 십장생, 매화, 달과 항아리 같은 민족 고유의 조형을 두툼한 질감으로 조형화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을 지내고 예술원 회원과 한국 미술협회장을 지낸 미술계의 엘리트였다.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회화부분 명예상을 수상했다. 화가로서 탄탄대로였던 그가 고국을 떠나 고독과 외로움의 이국생활을 결행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11년간의 뉴욕생활은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의 싸움이었다. 고독과 그리움을 이기기 위해 걷고, 끝없이 또 걸었다. 이윽고 1965년 1월 2일 수화 나이 52세 때 점화가 탄생한다. 뉴욕으로 떠난 지 2년만의 일이다. 두툼한 질감에서 수묵화의 엷은 번짐의 기법으로 그리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찍어내며 그려나갔다. 그것은 별이었고, 시였고, 그리움이었다. 드디어 우주를 만난다. 모든 그리운 사람을 안고 휘도는 그의 우주.

아는 이가 없는 낯선 땅 뉴욕에서 그가 매일 마주한 것은 하얀 캔버스뿐이었다. 예술가에게 새로운 작품세계를 찾는 일은 고행의 강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일이다. 먼 이국 땅 고독한 방에서 마주했던 캔버스는 그에게 얼마나 큰 무서움을 주었을까.

“아침부터 백설이 분분…종일 그림을 그리다 점화가 성공할 것 같다. 미술은 하나의 질서다.” 1965년 1월 2일 김환기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9일 후 ‘겨울의 새벽 별’을 완성하고 환희에 소리친다. 김환기는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무수한 점을 그려나가 드디어 ‘우주’를 만났다.

그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그림의 제목은 수화의 친구였던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빌려왔다. 수화는 1974년 7월 25일 뉴욕에서 61세의 나이로 뇌출혈로 쓰러져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김환기는 50세에 고국을 떠나 11년간 그리움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65세에 고국을 떠나 일 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작업환경이 열악하여 작은 종이에 긋고 또 그어야 한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영혼의 밑바닥을 걷다가 무엇을 만날는지 알 수 없다. 트빌리시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강에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흘러간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노을이 저녁이 되면 수시로 찾아온다. 오늘도 저녁이 되면 므뜨끄바리강 다리 위에 혼자 서 있는 나를 본다. 강변에 덩치 큰 플라타너스 사이로 노랗게 눈을 뜬 차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지상에 떨어진 우주. 그 광활함에 목이 메어온다. 언제쯤 그 신비를 만날 수 있을까. 강에 부서지는 수은등을 버리고 숙소로 돌아온다. 내 모습도 흐르는 강에 부서진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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