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벽에 기대어 음악에 취한다
숙소 거실에 마련된 어두운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 지 며칠이 지났다.
도무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모호한 안개 속을 거닐고 있는 나날이다. 아크릴은 손에 익숙하지 않다. 소묘와 수채화를 그렸다. 오일 크레용 파스텔, 콩테, 연필 등 주위에 있는 것들을 종이에 칠하고 긋고 긁기도 한다. 매일 거실에 나와 그리는데도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십 년을 그렸는데도 생소하다.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하나. 고립된 세상에서는 자꾸 침잠된다.
혼자만의 시간은 새로운 세계보다는 생과 죽음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 빠져들게 된다.
그림이 철학에 빠지면 조형의 신선한 생명이 사라질 수가 있다. 예술이 철학과 다른 점은 ‘감동을 주는 표현’이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고를 가볍고 위트 있게 살아있는 감동을 주는 조형의 세계로 보여줘야 한다. 마음껏 작업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의식의 자유로움과 치열한 싸움이다.
새벽녘에 잠이 깨면 혼자 잠들어 있는 방으로 어렴풋이 흐릿한 빛이 찾아온다.
밖은 새벽인데도 차가 지나가는 소리,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고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르자니쉬빌리는 호텔이라는 간판은 붙어 있으나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여인숙 같은 호텔이 많다. 가난한 여행자들이 새벽에 깨어 이른 시간에 길을 떠나기도 하고, 최초의 와인을 만든(8000년의 역사)나라답게 새벽까지 술에 취해 떠들기도 한다.
길을 걷다보면 대낮인데도 술병을 들고 취해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본다.
낡은 건물에 스며들 듯 서 있는 사람, 낯선 이에게 담배를 요구하는 사람, 수시로 부딪치는 걸인들.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가는 지하철 입구에서 세상 편하게 누워서 자고 있는 개들의 모습이 트빌리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러시아의 원조로 유지되었지만 사회주의를 벗어난 지가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거리 곳곳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렇지만 조지아 인들이 낭만과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녁이 짙어지고 어둠으로 거리가 젖어오면 트빌리시의 거리는 거짓말처럼 생기를 띤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건물들의 창에 불빛이 돋아나면 오래 된 거리에 축제의 불꽃처럼 아름답게 치장한 밤이 나타난다.
트빌리시는 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간이면 두 세 명이 모여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트빌리시 사람이면 누구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잘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트빌리시에서는 음악이 삶이다. 칠십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가 마르자니쉬빌리 지하철역 입구에서 색소폰을 분다. 작업모에 러시아시대 때 노동자들이 입을법한 가죽점퍼를 입고 늙은 연주자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블루스 음악을 연주한다. 그의 앞에 놓인 모자에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닢이 쌓여있다. 눈을 감고 그는 자신의 생을 연주하고 있다.
조금 더 길을 걷다보면 영화에서 나옴직한 잘 생긴 젊은이들이 모여 기타와 바이올린을 켠다.
젊은이들 몇 명이 모여 짝을 이뤄 길에서 연주한다. 그 중 한 명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한다. 주면 좋아하고 그냥 지나가도 싫어하지 않는다. 루스타벨리나 올드타운에 가면 나이에 관계없이 악기를 연주한다. 아코디언, 드럼, 기타, 바이올린, 피리 등등 연주하는 악기도 다양하다. 낮이면 시름시름 앓던 트빌리시에 밤이 되면 이렇게 낭만과 열정이 찾아온다. 루스타벨리 지하철역 앞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규모가 꽤 큰 버스킹을 한다. 이곳에서 음악과 춤이 함께 어우러진다. 날씬한 몸매에 익숙한 춤꾼들의 춤사위는 관광객들의 발을 멈추게 한다. 지하철 역 계단에 앉은 나그네들이 낭만과 열정에 흠뻑 빠져든다.
저녁과 밤사이 그 순간의 블루
비 내리는
남루한 저녁 마르자니쉬빌리 거리를 걷는다
오랜 세월 거리에 서있는 플라타너스가
바람에 온 몸의 먼지를 털어낸다
이방인의 외투주머니에는 버리지 못한
구겨진 종이가 부스럭거린다.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쓸데없는 것들을 힘껏 움켜쥐고 있는 것이 인생인가
지하철 역 입구 붉은 네온사인 간판 아래에는
늙은 사내가 들려주는 색소폰 소리가
저녁을 붙잡고 있다
종일 내린 비에 젖어가는 블루색 멜로디
거리는 짙어가는 블루에 물들어가고
나는 찬 벽에 기대어
늙은 사내의 음악에 취한다.
바닥의 고인 물에 떠나려는
저녁하늘이 고여 있다
사람들의 종종걸음에 조각나는 저녁하늘
무심한 사람들은 급히 건물 사이로 사라진다
떠나는 사람들은 사랑을 구겨진 종이처럼
주머니에 넣어 쥐고 있다.
색소폰 멜로디에 사랑이 흐른다.
블루스 블루스 블루스
나는 아직 찬 벽에 기대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 종일 말을 잊고 있었다
등 뒤로 무언가 나를 토닥거린다
블루가 씩- 하고 웃고 있다
저녁과 밤사이
그 순간의 블루가 서 있다.
(한희원 ‘저녁과 밤 사이 그 순간의 블루’)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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