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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3> 밤에 깨어나는 도시

입력 2019.11.22. 09:08 조덕진 기자
거리는 짙은 블루에 물들어 가고
찬 벽에 기대어 음악에 취한다
러시아 정교회

숙소 거실에 마련된 어두운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 지 며칠이 지났다.

도무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모호한 안개 속을 거닐고 있는 나날이다. 아크릴은 손에 익숙하지 않다. 소묘와 수채화를 그렸다. 오일 크레용 파스텔, 콩테, 연필 등 주위에 있는 것들을 종이에 칠하고 긋고 긁기도 한다. 매일 거실에 나와 그리는데도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십 년을 그렸는데도 생소하다.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하나. 고립된 세상에서는 자꾸 침잠된다.

혼자만의 시간은 새로운 세계보다는 생과 죽음 같은 근원적인 문제에 빠져들게 된다.

그림이 철학에 빠지면 조형의 신선한 생명이 사라질 수가 있다. 예술이 철학과 다른 점은 ‘감동을 주는 표현’이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고를 가볍고 위트 있게 살아있는 감동을 주는 조형의 세계로 보여줘야 한다. 마음껏 작업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의식의 자유로움과 치열한 싸움이다.

새벽녘에 잠이 깨면 혼자 잠들어 있는 방으로 어렴풋이 흐릿한 빛이 찾아온다.

밖은 새벽인데도 차가 지나가는 소리,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고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르자니쉬빌리는 호텔이라는 간판은 붙어 있으나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여인숙 같은 호텔이 많다. 가난한 여행자들이 새벽에 깨어 이른 시간에 길을 떠나기도 하고, 최초의 와인을 만든(8000년의 역사)나라답게 새벽까지 술에 취해 떠들기도 한다.

길을 걷다보면 대낮인데도 술병을 들고 취해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본다.

낡은 건물에 스며들 듯 서 있는 사람, 낯선 이에게 담배를 요구하는 사람, 수시로 부딪치는 걸인들.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가는 지하철 입구에서 세상 편하게 누워서 자고 있는 개들의 모습이 트빌리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러시아의 원조로 유지되었지만 사회주의를 벗어난 지가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거리 곳곳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렇지만 조지아 인들이 낭만과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녁이 짙어지고 어둠으로 거리가 젖어오면 트빌리시의 거리는 거짓말처럼 생기를 띤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건물들의 창에 불빛이 돋아나면 오래 된 거리에 축제의 불꽃처럼 아름답게 치장한 밤이 나타난다.

트빌리시는 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간이면 두 세 명이 모여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트빌리시 사람이면 누구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잘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트빌리시에서는 음악이 삶이다. 칠십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가 마르자니쉬빌리 지하철역 입구에서 색소폰을 분다. 작업모에 러시아시대 때 노동자들이 입을법한 가죽점퍼를 입고 늙은 연주자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블루스 음악을 연주한다. 그의 앞에 놓인 모자에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닢이 쌓여있다. 눈을 감고 그는 자신의 생을 연주하고 있다.

조금 더 길을 걷다보면 영화에서 나옴직한 잘 생긴 젊은이들이 모여 기타와 바이올린을 켠다.

젊은이들 몇 명이 모여 짝을 이뤄 길에서 연주한다. 그 중 한 명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한다. 주면 좋아하고 그냥 지나가도 싫어하지 않는다. 루스타벨리나 올드타운에 가면 나이에 관계없이 악기를 연주한다. 아코디언, 드럼, 기타, 바이올린, 피리 등등 연주하는 악기도 다양하다. 낮이면 시름시름 앓던 트빌리시에 밤이 되면 이렇게 낭만과 열정이 찾아온다. 루스타벨리 지하철역 앞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규모가 꽤 큰 버스킹을 한다. 이곳에서 음악과 춤이 함께 어우러진다. 날씬한 몸매에 익숙한 춤꾼들의 춤사위는 관광객들의 발을 멈추게 한다. 지하철 역 계단에 앉은 나그네들이 낭만과 열정에 흠뻑 빠져든다.

저녁과 밤사이 그 순간의 블루

비 내리는

남루한 저녁 마르자니쉬빌리 거리를 걷는다

오랜 세월 거리에 서있는 플라타너스가

바람에 온 몸의 먼지를 털어낸다

이방인의 외투주머니에는 버리지 못한

구겨진 종이가 부스럭거린다.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쓸데없는 것들을 힘껏 움켜쥐고 있는 것이 인생인가

지하철 역 입구 붉은 네온사인 간판 아래에는

늙은 사내가 들려주는 색소폰 소리가

저녁을 붙잡고 있다

종일 내린 비에 젖어가는 블루색 멜로디

거리는 짙어가는 블루에 물들어가고

나는 찬 벽에 기대어

늙은 사내의 음악에 취한다.

바닥의 고인 물에 떠나려는

저녁하늘이 고여 있다

사람들의 종종걸음에 조각나는 저녁하늘

무심한 사람들은 급히 건물 사이로 사라진다

떠나는 사람들은 사랑을 구겨진 종이처럼

주머니에 넣어 쥐고 있다.

색소폰 멜로디에 사랑이 흐른다.

블루스 블루스 블루스

나는 아직 찬 벽에 기대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 종일 말을 잊고 있었다

등 뒤로 무언가 나를 토닥거린다

블루가 씩- 하고 웃고 있다

저녁과 밤사이

그 순간의 블루가 서 있다.

(한희원 ‘저녁과 밤 사이 그 순간의 블루’)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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