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동 일부 붕괴 관련 사고 기록 안 돼
골조공사 마무리 시한 지난달로 기록돼
공기단축 위한 무리한 작업 지시 추정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의 부실시공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건설 공사를 책임 감독해야 하는 현장 감리자의 관리감독 소홀 정황이 담긴 보고서가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해당 보고서에 골조 공사 마무리 시한이 지난달 말로 적힌 예정 공정표가 공개되면서 공기 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 지시가 대형사고로 이어졌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19일 무등일보가 확보한 화정아이파크 신축공사 감리업체의 '주택건설공사 감리업무 2021년 4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203동 39층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바닥 일부가 주저앉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보고서에서는 일절 기록돼 있지 않다.
오직 지난해 10월 21일 발생한 추락사고 단 한 건만 보고됐다. 인근 상가 주민들은 착공 후 8차례 이상 낙하물이 떨어져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했지만 해당 보고서 '재해 발생 현황표'에 낙하 항목은 '0건'으로 기록됐다. 현장 감리자가 인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추락, 전도, 충돌, 낙하, 붕괴, 감전 등 재해 발생 시 사고원인과 피해사항, 원인분석, 대책 등을 보고서에 기재해야 하지만 해당 보고서에는 일절 언급되지 않으면서 건설현장의 감리보고서가 형식적으로 작성됐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건축 관계자는 "현장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감리일지에 기록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만 통상적으로 인명피해 없이 건축물 일부가 경미하게 무너져 현장에서 조치가 가능한 경우에는 정도에 따라 특이사항에 기재할 수도 기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기 단축으로 인한 무리한 공사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보고서에 적힌 예정 공정표를 보면 사고가 발생한 201동의 경우 지난달 말 골조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기록 돼 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난 11일까지 39층에서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즉, 예상보다 공기가 늦어지면서 영하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콘크리트 타설을 진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따라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보통의 콘크리트는 영하 0.5도에서 영하 2도 이하에서 얼기 시작하는데 이번 참사가 발생한 지난 11일 광주지방기상청에 기록된 광주 지역 기온은 영하 3.5도에서 영상 3도 분포를 보였다. 사고가 접수된 오후 3시47분에는 영하 1.6도였다.
실제로 건설노조 광주전남본부가 확보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201동 콘크리트 타설 일지에 따르면 최소 12일에서 18일까지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쳤다는 현산 측의 주장과 달리 해당 작업일지에는 최소 6일에서 11일의 양생 기간을 거친 것으로 드러났다.
최명기 한국기술사회 중앙사고 조사단장은 "콘크리트가 경화되는 데 기온이 큰 영향을 미친다"며 "겨울철의 경우 온도가 낮아 콘크리트 안에 물이 얼 가능성이 높아 충분한 난방작업과 양생 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예지기자 foresight@mdilbo.com
- 콘크리트 품질저하 우려되는 '우중타설'...법적 규제 절실 전국에서 콘크리트 품질 저하로 인한 건물 붕괴 참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명확하지 않은 건설 현장 콘크리트 시공 기준에 대한 법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올해는 지역에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관행적으로 '우중(雨中) 타설' 공사가 실시되면서 대형 참사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고조됐다. 최근 정부가 우중 타설과 관련 표준시방서 개정을 검토하고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비나 눈이 오는 날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무엇이 문제되나콘크리트 강도는 건축물의 안정성과 내구성에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지난해 1월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와 올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모두 사고원인 중 하나로 콘크리트 강도 부족이 지목됐다. 인천 검단신도시 붕괴 사고의 경우 준공 이후 사고가 발생했다면 제2의 화정아이파크 참사가 재현될 수도 있었다.콘크리트 강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시멘트와 골재를 비롯한 재료의 품질, 시공·양생 방법, 공기량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물의 배합 비율'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국토교통부 일반콘크리트 표준시방서에서도 물과 시멘트의 비율인 '물-결합재비'를 60%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데, 비가 내리는 날 타설하게 되면 콘크리트 표면과 내부에 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묽어지면서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습기가 상대적으로 높아 콘크리트가 굳어지는 속도도 느려진다. 우중 타설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다.국토교통부 일반콘크리트 표준 시방서. '강우, 강설 등이 콘크리트 품질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필요한 조치를 정해 책임기술자의 검토·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만 명시돼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국토부·LH 기준 어떻길래하지만 잇단 참사에도 불구하고 우중 타설은 여전히 건설 현장에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붕괴참사가 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2단지 맞은편 A 아파트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우중 타설을 진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우중 타설을 금지할 규정이나 지침이 따로 없어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우중 타설과 관련된 지침은 국토부 표준시방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자체 기준뿐이다.먼저 국토부 일반콘크리트 표준시방서에는 '강우, 강설 등이 콘크리트 품질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필요한 조치를 정해 책임기술자의 검토·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만 명시돼 있다.강우·강설량의 구체적 수치가 규정돼 있지 않은데다 검토·확인을 받아야 하는 책임기술자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즉,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얼마든지 무리한 타설이 가능한 셈이다.그나마 대부분 건설 현장에서 따르는 LH의 자체 기준은 국토부 표준시방서보다는 구체적이다. 일기예보에 따라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될 때는 원칙적으로 타설을 금지했으며, 소나기가 자주 내리는 하절기에는 오전 중 타설을 권고했다. 아울러 시간당 강수량을 5㎜·일 강수량을 20㎜ 이상의 비가 내릴 때는 콘크리트 타설을 금지하고 콘크리트 표면을 빗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안내했다.이에 따라 앞서 논란이 일었던 A 아파트 시공사 측에서는 시공 당일 강수량이 LH의 기준인 '시간당 5㎜에 미치지 못 했다'고 관련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문제는 LH 기준의 경우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 감독이나 감리의 승인이 있으면 우중 타설이 가능하다.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스마트 핸드북 1권 구조체 공사 306페이지에 적힌 우중 타설과 관련된 내용.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논란 일자 국토부 개정 검토…전문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전국 곳곳에서 우중 타설에 대한 논란이 일자 국토부는 지난 19일 표준시방서 개정을 위한 검토에 나섰다. 구체적인 개정 범위에 대해 밝히진 않았으나 우중 타설과 관련 현장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도 우중 타설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이 강수량에 따라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게 바람직한지 논의 중이다"고 설명했다.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타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오봉환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26일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슬비나 폭우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원칙적으로 타설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며 "빗물로 인해 배합 비율 달라질 경우 품질이 저하돼 불량 콘크리트가 될 수밖에 없다. 무너지고 안 무너지고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다"고 말했다.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라면 끓일 때 분말스프와 물의 양이 적당해야 하듯이 우중 타설을 하면 설계 당시 배합보다 물의 양이 늘어나 콘크리트 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타설을 하다가 중단하게 되면 설계상 없는 '시공이음(경계 부분 실금)'이 생겨 추후 균열로 이어져 준공 이후 누수를 일으키곤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시간당 4㎜도 1시간 정도 내리면 강도가 67%밖에 안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장에서 일주일 날씨를 파악해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만 타설 계획을 수립하는 게 좋다"며 "이상기후가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 타설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끝으로 "책임기술자라는 모호한 표현보다는 현장을 실질적으로 컨트롤하는 감리단장을 현장 승인권자로 지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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