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대학입시 개혁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3.12.19. 09:58


바야흐로 대학입시의 계절이다. 최근 나온 수능고사 성적을 놓고 집집마다 희비쌍곡선이 교차하고 있다. 인생은 여러 구비라서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는데 한 번 시험에 실패해서 낙담,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많아 안타깝다. 수험생을 둔 집은 조금이라도 나은 대학을 목표로 온갖 지혜를 짜내고 눈치작전에 돌입해 있다.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는 너무 복잡해서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것이다. 대학마다, 학과마다 제도가 다르고 알 수 없는 미로가 도처에 있다. 현행 입시제도는 너무 복잡해 악마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대폭 단순화해야 한다. 면접이니 논술이니 이런 것도 폐지하는 게 옳다.

우리가 입시지옥을 벗어나려면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하나 있다. 대학입시 패배주의. 즉, 어떤 입시제도를 도입해도 입시지옥은 해결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적 생각이다. 입시 패배주의의 신봉자들은 굉장히 숫자가 많은데 이들은 우리나라가 해방 후 수십번 입시제도를 바꾸었지만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악화일로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입시 패배주의는 옳을까? 아니다. 어느 나라나 대학입시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지만 우리나라만큼 입시지옥이 심한 나라는 없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도 외국처럼 좋은 입시제도를 마련하면 얼마든지 입시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반세기 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정곡에서 벗어난 엉터리 개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연연세세 계속된다. 이제는 입시제도를 제대로 개혁해 고통의 뿌리를 뽑자. 몇 가지 개혁안을 제시해보겠다.

첫째, 교사별 평가. 교사별 평가란 교사가 각자 작성한 교육프로그램에 입각해 독자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반면 교과별 평가란 한국의 형행 제도로서 여러 교사가 가르친 내용에서 공통 출제(주로 객관식)해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교사별 평가를 하면 창의적, 혁신적 수업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학원 과외가 발붙일 여지가 적다는 장점까지 있다. 아무리 유능한 학원 강사라도 그 많은 교사들의 수업 내용을 다 포괄해서 족집게 과외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반면 교과별 평가에서는 교사들보다 더 잘 가르치는 학원 과외, 일타 강사가 무수히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과별 평가는 과외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교사별 평가에서는 열성 있는 교사들의 다양성, 창의성 수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교과별 평가에서는 독창적 수업은 진도 방해로 지탄받는다. 수업 내용을 위해서나 과외를 줄이기 위해서나 교사별 평가가 맞다. 교사별 평가를 하면 교사들의 교과 연구와 실력이 중요해지고 책임이 커지며 그에 따라 당연히 교사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문제 투성이 교과별 평가를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선진국이 다 하는 교사별 평가로 가자.

둘째, 경로별 입시. 입시의 통로를 여럿 두어 학생들이 원하는 문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 예를 들어 내신만으로 학생의 절반을 뽑고, 수능만으로 1/4의 학생을 뽑고, 나머지는 특별한 재능 있는 학생, 독립유공자 후손이나 사회적 선행자, 이런 식으로 뽑자. 현행 입시제도는 내신도 좋아야 하고, 수능도 잘 쳐야 하고. 끝없는 and를 요구하는데 이것을 or로 바꾸어야 한다. 여러 조건 중 하나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수능 등급제를 점수제로 바꾸자. 원래 점수제였던 수능이 참여정부 때 등급제로 바뀌었다. 그때 교사별 평가, 경로별 입시 등 근본적 개혁안이 추진됐는데 그것은 종래보다 학교 수업과 내신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자니 자연히 수능의 비중을 낮출 필요가 있어 등급제로 바꾼 것이다. 이대로 갔더라면 큰 개혁이 됐을 텐데 교육부가 기를 쓰고 반대하는 바람에 교사별 평가, 경로별 입시는 무산되고 수능 등급제만 살아남았다. 경로별 입시, 교사별 평가를 안 하는 이상 수능은 점수제가 맞다. 점수 1점 차이가 1점 차이로 끝나지 않고 등급 1등급이라는 큰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등급제 수능은 매우 불공평하다. 등급제를 폐지하고 점수제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경로별 입시, 교사별 평가를 도입하든지.

넷째, 국립대 공동학위제. 선진국 대학의 특징은 좋은 대학이 여럿 있고 대학 간 우열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입시 경쟁도 한결 부드럽다. 우리는 대학간 서열이 너무 뚜렷해서 문제다. 한때 서울대 폐교론이 유행했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다. 더 좋은 방법은 서울대를 여럿 만들어 입학, 졸업을 공동관리하는 것이다. 전국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투자해 발전시키자. 현재 서울대 예산이 지방 국립대의 4배나 되어 과도한 차별이다. 서울대는 재벌들이 기부하러 줄을 서 있으니 구태여 정부까지 나서서 도와줄 필요가 없고 정부가 투자할 곳은 지방 국립대다. 지방 국립대가 살아야 지방 枯死 현상을 막고 균형발전을 할 수 있다.

다섯째, 추첨입학. 이것은 의 저자인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제안하는 것이다. 수능 몇 점 이상 학생을 입학 정원의 서너배 정도 뽑은 뒤 추첨으로 최종 합격자를 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점수 1점을 더 따려고 사력을 다할 필요가 없고, 입시 경쟁이 훨씬 누그러질 것이다. 그리고 떨어진 학생도 운이 나빠 떨어진 것이니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필요 없이 웃어넘길 수 있다. 대단히 좋은 아이디어다.

이상 다섯 가지 개혁만 해도 과외는 많이 줄어들고 입시지옥은 크게 해소될 것이다. 우리나라 입시지옥이 지속된 이유는 교육부의 보수주의와 1류대의 이기주의에 있다. 좋은 학생을 독점하려는 1류대 이기주의를 교육부가 타파하기는커녕 항상 한편이 되어 왔다. 그래서 제대로 된 입시제도 개혁이 불가능했다. 이제는 국민이 나서서 1류대와 교육부를 꾸짖고 진정한 입시제도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더 이상 학생들을 고문하지 말고, 더 이상 학부모를 고통에 빠뜨리지 말자.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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