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역지사지'] 윤석열은 왜 협치를 하지 않을까?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05.23. 10:08

윤석열 역시 '적폐청산'이란 말만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 적폐청산의

길로 나섰기에 협치는 원초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조국 사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루어진 윤석열의

집권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야당을 향해

제발 협치를 하자고 매달리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면 '독선·오만·불통 이미지'는

오히려 야당에게 들러붙을텐데

그걸 모르나?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애를 써도 모자랄 판에

실속없는 큰소리만 뻥뻥 날리고 호통까지

쳐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런 불평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윤 정권은 '외양 관리'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입증하기 어려운

'본질 타령'만 하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은 정권이 또 있을까?

2020년 7월 16일 21대 국회가 개원식을 열고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원축하 연설에서 "20대 국회의 가장 큰 실패는 협치의 실패였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21대 국회는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반드시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과 같은 전 세계적인 위기와 격변 속에서 협치는 더욱 절실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말과는 달리 협치를 하지 않았다. 협치를 할 뜻도 없었다. 협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강성 지지자들에겐 더러운 변절의 말이다. 내내 그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아온 문재인이 새삼스럽게 그들을 화나게 만들 일을 할 리 만무했다. 전체 국회 상임위원장 18자리를 민주당이 독식하는 '협치 죽이기'를 완료한 바로 그 날에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보여준 것도 그래서였을 게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가? 문재인과 똑같은 길을 걸었다. 그는 대선 다음날인 2022년 3월10일 당선 인사에서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식 엿새 뒤인 5월16일 임시국회 추경예산안 시정연설에서는 이런 말까지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윤석열도 문재인처럼 별 생각없이 듣기에 좋은 말만 했을 뿐, 두 사람 모두 성격과 체질상 협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두 사람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협치에 적대적이었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보수가 사실상 궤멸된 상황에서 문재인이 자신의 정체성으로까지 삼은 적폐청산은 협치의 기반 위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윤석열 역시 '적폐청산'이란 말만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 적폐청산의 길로 나섰기에 협치는 원초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대통령 탄핵의 결과로 이루어진 문재인의 집권이 정상적이지 않았듯이, '조국 사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루어진 윤석열의 집권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최병천이 잘 지적했듯이,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일 1망언'을 하는지 알고도 그를 뽑았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가 더 걱정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의 문제는 정책적 차원에서만 그친 게 아니라 사법적 차원에서도 크게 불거졌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대응 자세와 방법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문제를 털고 가기보다는 아예 그걸 조작으로 우기는 동시에 스스로 '방탄벽'이 되기를 자처하는 모순 덩어리였다. 여기에 더하여 대선 사상 최소 표차(24만7077표, 0.73%포인트)로 승패가 결정된 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을 때 패자에게 나타나는 '간발 효과(nearness effect)'는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PESD·Post Election Stress Disorder)'로 이어져 윤석열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키움으로써 협치의 가능성을 죽이는 데에 일조했다.

윤석열은 그 어떤 문제에도 불구하고 솔직하다는 장점은 있다. 그는 대선기간 중 적폐청산 의지를 밝혔거니와 협치의 대상에서 이재명을 배제했다. 그는 2022년 2월 22일 선거유세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민주당에 참여했던 합리적 인사들과 협치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도 이재명에 대해선 "부정부패 대장동 사건을 보라. 저런 사람을 후보로 미는 민주당이 김대중의 민주당, 노무현의 민주당인가"라며 비판했다. 그는 3월 3일 유세에서도 "집권하게 되면 이재명 민주당의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을 갈아치우고 민주당의 양식 있는 분들과 멋진 협치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발언은 당시 여권의 분열을 노린 선거전략으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이재명과는 협치를 할 수 없다는 건 윤석열의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대장동 몸통'으로 지목한 이재명의 대담한 상상력에 대해 격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곤 했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가 집권 1년차에서 어떤 식으로건 한 단계 매듭이라도 지어졌다면 윤석열은 협치를 하거나 다른 방향 전환을 하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현재진행형 사건으로 아직도 갈 길이 멀기에 윤석열에게 사실상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협치와 소통을 거부하는 거칠고 고압적인 일방통행형 지도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뒤집어 씀으로써 만성적으로 낮은 지지율에 갇히고 말았으니 말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단을 치닫는 상황에서 선거나 여론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중도파 유권자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오직 기존 지지자들만을 염두에 둔 정치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도파는 이미지에 민감하건만 이미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거친 강성 행보만 보이면 어쩌자는 건가? 그러면서도 윤 정권 인사들은 야당을 향해 윤석열의 '독선·오만·불통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 거부권 유도' 정략마저 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니 어지럽다. 그걸 잘 알면서도 윤석열의 강한 적폐청산 의지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걸 한탄하는 건가?

야당을 향해 제발 협치를 하자고 매달리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면 '독선·오만·불통 이미지'는 오히려 야당에게 들러붙을텐데 그걸 모르나?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애를 써도 모자랄 판에 실속없는 큰소리만 뻥뻥 날리고 호통까지 쳐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런 불평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정치는 '본질의 영역'이 아니라 '외양의 영역'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미 500년 전 그걸 꿰뚫어 보았건만, 윤 정권은 '외양 관리'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입증하기 어려운 '본질 타령'만 하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은 정권이 또 있을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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