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제발 욕 대신 말 좀 하고 살아보자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04.25. 10:11

욕설과 모욕을 동반하는 악플과 문자폭탄은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을 죽이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폭력에 가까운 것이기에 규탄받아 마땅하다. 표현의 자유가 있지 않느냐고? 그건 법적 처벌을 논할 때에 고려되는 개념일 뿐, 마땅히 받아야 할 도덕적·정치적 비판과 비난의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 정치판엔 그런 토론과 논쟁의 공간이 없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한 모든 정당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정치인들이 돌아가면서 참여하는 당원들과의 토론회를 매주 한번씩 정례화하자. 생각을 달리 하는 당원들끼리 벌이는 당원들만의 토론회도 정례화하자.

지난 4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정청래는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에 대한 당내 비판 목소리에 "제일 멍청한 정치인은 지지자와 싸우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국회의원 세비에는 욕 값까지 포함돼 있다"며 "욕먹는 것을 고깝게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하면 안 된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또 "선거 때가 되면 부지깽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민주당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과 척지고 적이 되고 선거를 어떻게 치르냐"고 반문했다.

과연 그런가? 그렇게 보아야 하나? 이 주장에 고민해볼 점은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해도 강성 지지자들의 악플과 문자폭탄 공세를 비판했던 동료 의원들을 "제일 멍청한 정치인"으로 비난한 것엔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선거 때가 되면 부지깽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민주당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주당을 모든 공적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동료 의원들을 '멍청하다'고 비하해 내분을 조장하면서 선거를 어떻게 치르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청래는 7년 전에 출간한 '정청래의 국회의원 사용법'이라는 책에서 "국회의원을 움직이는 최고 단위 정치 행위는 팬클럽이다"고 했다. 7년 전 그가 공천에서 탈락했을 때 그의 팬클럽이 전화, 문자 폭탄, 탈당계 팩스 등의 공세를 퍼부어 거의 일주일 내내 중앙당과 17개 시도당의 업무가 마비되었다고 한다. 그런 일도 있었던만큼 그가 팬클럽을 중시하는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국회의원을 움직이는 최고 단위 정치 행위가 팬클럽이라는 건 논란의 소지가 큰 주장이다. 그런 유혹에 굴복해선 안된다는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팬클럽에 대한 강한 애정 때문에 객관적 시각을 갖기 어렵다면, 상대 정당인 국민의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광훈 논란'을 살펴 보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목사이자 정치운동가인 전광훈을 따르는 사람들은 국민의힘을 강력하게 지지해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선 논란의 소지가 큰 전광훈의 언행에 부담을 느껴 전광훈과 결별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제일 멍청한 정치인은 지지자와 싸우는 것"이라며 당내의 전광훈 비판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면,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팬덤 정치'가 한국 정치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잡으면서 각 정당과 정치인은 한가지 공통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팬덤의 '월권'에 관한 것이다. 연예인 팬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연예인이 잘 되기만을 빌면서 연예 활동을 지원할 뿐 그런 활동 자체에 개입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설정하진 않는다. 아이돌 그룹을 지지하는 팬덤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구는 빼고 가야 한다는 등 멤버 구성 문제까지 간섭하는 법은 없다.

반면 정치 팬덤은 대부분 '정당 팬덤'이라기보다는 '정치인 팬덤'이기 때문에 정당 내부의 갈등에 개입하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인정되고 있다. 토론과 논쟁은 민주주의의 꽃으로 환영받아 마땅한 것이기에 장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욕설과 모욕을 동반하는 악플과 문자폭탄은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을 죽이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폭력에 가까운 것이기에 규탄받아 마땅하다. 표현의 자유가 있지 않느냐고? 그건 법적 처벌을 논할 때에 고려되는 개념일 뿐, 마땅히 받아야 할 도덕적·정치적 비판과 비난의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다.

"국회의원 세비에는 욕 값까지 포함돼 있다"거나 "욕먹을 용기 없으면 정치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게 말이 되는 말인가? 지난 토요일 '한겨레'에 게재된 '민주당 강성 지지층, 그들은 왜 멈추지 않는가'라는 기사에 소개된 욕설 세 개만 감상해보자. "수박 ××들 모조리 사료분쇄기에 갈아 악어 우리에 던지고 싶습니다" "천벌 아니면 벼락 맞아 뒤질 것." "000은 친일 매국노. 역적 ××야." 이런 욕을 듣는 것에 대한 보상이 국회의원 세비에 포함돼 있다고? 이런 욕을 들을 '용기'가 없으면 정치를 그만 둬야 한다고? 너무 어이가 없어 머리가 어지럽다.

그런 주장은 반(反)정치나 정치혐오주의의 극치라고 해도 좋을 넌센스다. 그런 욕을 묵묵히 감내하는 건 '굴종' 또는 '자학'일 뿐 '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전체 유권자라거나 유권자의 다수라면 또 모르겠다. 다수 유권자들이 혀를 끌끌 차는 유형의 극소수 강성 지지자들일 뿐이다. 그들의 폭력적인 행태가 중도층 유권자를 쫓아낸다는 건 상식이 아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느 강성 지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아군한테 총 겨누지 말고 보수 언론, 검사독재와 싸워주세요. 이재명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세요'라고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그런데 아무 답도 없어요. 자극적인 문자를 보내니 그제야 반응이 오더라고요." 이 말을 애써 선의로 해석하자면, 정치인들과의 쌍방향 토론과 논쟁에 굶주렸다는 말일 게다.

사실 우리 정치판엔 그런 토론과 논쟁의 공간이 없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한 모든 정당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정치인들이 돌아가면서 참여하는 당원들과의 토론회를 매주 한번씩 정례화하자. 생각을 달리 하는 당원들끼리 벌이는 당원들만의 토론회도 정례화하자. 강성 당원들은 속된 말로 '답정너' 요구에 중독된 사람들인데, 그런 토론회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겠다. 그래서, 조건이 하나 있다. 정중해야 한다. 얼굴 마주보고 하는 토론회에서 욕을 내뱉을 사람은 없겠지만, 열기가 뜨거워지면 사고 칠 사람도 나올 수 있으니 사회자에게 '정중한 언행' 위반자는 즉각 퇴장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

그래도 합리적인 토론은 어려울 거라는 비관론이 있을 게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국회의원 세비에는 욕 값까지 포함돼 있다"거나 "욕먹을 용기 없으면 정치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예 나오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과의 쌍방향 토론과 논쟁의 기회가 충분히 보장된 상황에서 그런 변명이나 핑계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질 테니까 말이다. 제발 욕 대신 말 좀 하고 살아보자.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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