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앵벌이성 후원금'과 '출판기념회'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02.28. 09:49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을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걸 하는 의원들은

비교적 정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편법 후원금 통로'로 이용돼 온

출판기념회는 상당 부분 위세를 이용한

수금으로 볼 수 있는 반면,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은 시종일관 그야말로 낮은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편법 후원금 통로'의

수준을 넘어 공공연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모금회로 불린 지도 오래됐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정치자금 정상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개선책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 번 째는 돈이다. 두 번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미국 정치인 마크 한나의 말이다. 그는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의 선거본부장이었는데, 1896년 대선 당시 맥킨리가 쓴 선거자금은 경쟁자보다 5배나 많은 액수였다고 한다. 물론 이 선거는 맥킨리의 승리로 끝났다.

20세기엔, 그리고 21세기 들어선 좀 나아졌을까? 겉보기에 나아진 점은 있었지만, 한가지 변치 않은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돈은 정치의 젖줄이다"는 사실이었다. 1977년에서 1987년까지 10년 넘게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팁 오닐은 정치에서 돈의 중요성을 그렇게 간결한 한마디로 정리했다.

"백악관을 향한 선거전은 실제로 투표가 이루어지기 전에 결정된다." 미국 정부와 공직자들의 정직성을 감시하는 초당파적 비영리조사기구인 CPI의 전무이사인 찰스 루이스가 '2004년도 대통령 매수하기'라는 책에서 돈에 의해 선거가 좌우되는 '돈 선거'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 정치의 더러운 비밀은, 최고 부유층이 선거 1년 전에 자기들끼리 비밀리에 투표를 해버린다는 점이다"고 개탄했다.

그대로 다 믿을 말은 아니지만, 한국정치는 그런 주장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한국정치에서도 돈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돈을 구하려는 풍경 중엔 소박하거나 짠한 장면들도 많으니 말이다. 이른바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은 어떤가.

"검찰의 악랄한 짓거리가 연일 터지고 있다. (국정감사 준비를 위한) 군자금이 부족하다. 저랑 의원실 보좌진이 밥을 굶고 있다. 매일 김밥이 지겹다. 염치없지만 후원금 팍팍 부탁드린다. 저에게 밥 한 끼 사주시고 검찰개혁 맡긴다 생각하시고 후원 부탁드린다."

2020년 10월 16일 민주당 의원 김용민이 김어준의 '딴지일보' 등 친(親)민주당 매체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을 본 지지자들은 "의원님, '윤짜장'(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칭) 꼭 혼내주세요" 등의 댓글을 달고 소액 후원금을 보냈다고 썼다.

법사위원으로서 중립적인 입장으로 피감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의원이 지지자 사이트에 직접 검찰을 저격하면서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 글'을 쓴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의원들에겐 그만큼 후원금이 절실하다는 걸 실감나게 말해준 에피소드였다.

효과가 좋았다는 게 입증되자 약 열흘 후인 10월 27일 민주당 의원 정청래는 페이스북에 "통장이 텅 비어 마음마저 쓸쓸하다. 한푼 줍쇼"라는 글을 올렸다. 이로 인해 또 다시 '앵벌이' 논란이 일었지만, 바로 그 다음 날 정청래의 통장엔 2천700만원이 입금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년 후인 2022년 11월 27일 민주당 의원 김남국은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비법을 전수해 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속내는 글의 말미에 밝혔다. "이 글을 보고 웃고 계시거나 연애 꿀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후원 꼭 부탁드린다"며 "후원금이 텅텅 비었다. 청년 정치인들은 후원금 모금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는 글 게재 후 후원금이 쇄도한 사실을 알리며 "하루 사이에 지난 몇 개월간 받은 후원금보다 훨씬 많은 후원금을 보내줬다"고 밝혔다.

12월 29일엔 정의당 의원 류호정이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후원금은 이제 절반, 마감은 이틀 남았다"며 "구걸이라 조롱해도, 구질구질하다 핀잔해도 괜찮다. 의원실 보좌진, 당의 당직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기꺼이 일할 수만 있다면…"이라고 했다. 그는 "가난한 소수정당 의원의 정치자금은 최소한의 운영비, 정책개발비, 홍보비에 쓰기에도 늘 모자라기 때문"이라며 "도와달라. 널리 알려달라. 부탁드린다"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을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걸 하는 의원들은 비교적 정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편법 후원금 통로'로 이용돼 온 출판기념회는 상당 부분 위세를 이용한 수금으로 볼 수 있는 반면,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은 시종일관 그야말로 낮은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후원금은 영수증 발행, 선관위 신고, 회계 검사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운용해야 하는 반면, 출판기념회의 이른바 책값은 아무 제한 없이 받아 아무데나 써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편법 후원금 통로'의 수준을 넘어 공공연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모금회로 불린 지도 오래됐다. 권력이 센 정치인들이 츨판기념회로 10억을 모았다는 뒷말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오래 전에 나온 '눈도장 안 찍으면 … 출판기념회에 등골 휘는 지역 기업'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를 감상해보자. 이 기사에 따르면, 어느 지역 기업 대표는 "최근 한 달 새 출판기념회 초청장만 10개 넘게 받았다"며 "찍힐까봐 안 갈 수는 없는데 앞으로도 계속 초청장이 올 것이어서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직접 내미는 봉투뿐 아니라 행사장에 보내는 화환값 또한 만만치 않기에 지역기업인들은 그런 초청장을 '고지서'로 부른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노태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폐지하거나, 책값을 정가로 받게 하자"고 말했지만, 둘 다 이루어지긴 어려울 것 같다. 출판기념회에 대한 비난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간 달라진 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취지는 정의롭고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이다"는 반론을 무작정 비난만 할 게 아니라 모두 머리를 맞대고 '정치자금 정상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개선책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은 깨끗하다고는 해도 '증오 마케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다. 후원금을 아끼지 않는 강성 지지자들을 겨냥해 반대편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담론을 양산해내는 의원들이 있으며, 이들의 후원금 모금 실적이 비교적 좋다는 건 무얼 말하는가? 국민통합의 관점에선 그런 전투적 정치인들보다는 차라리 출판기념회를 통해 수금하는 정치인이 더 낫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광주·전남 대표 정론지 무등일보는 영남일보(경상), 중부일보(경기), 충청투데이(충청)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사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연합 필진 기고를 게재합니다. 해당 기고는 무등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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