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검찰개혁은 어떻게 종교전쟁이 되었나?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1.06.29. 08:00

이성으로 다뤄야 할 세속의

문제를 두고 종교적 사고와

언어로 말씀하시는 분들과

소통하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냥 같은 국민이자 동료 시민의

애정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수밖엔 없을 것 같다

다만, 그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좀더 너그러워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부디 당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지난 25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보면서 "종교적 신념이 아니고선 결코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편가르기'와 '내로남불'의 극치로 보였기 때문이다. 장기간 편가르기와 내로남불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심리 상태는 종교적 신념 이외엔 달리 설명하기가 어렵잖은가. 잠시 7개월 전으로 돌아가보자.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과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2020년 11월 30일에서 12월 2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검찰 개혁 추진 방향에 대해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라졌다"는 응답이 55%에 달했다. 반면 "당초 취지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이렇듯 여론은 압도적 비율로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문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12월 9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조국은 모세, 秋는 여호수아…신흥종교 된 檢개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이 나라 백성들은 이미 두 개의 공간에 나뉘어 살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55%는 법의 지배를 받는 세속의 공간에, 28%는 정치신학이 지배하는 환상의 공간에. 환상의 공간에 사는 이들의 눈에는 조국이 백성을 검찰 땅에서 해방시킨 모세로, 추미애는 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 여호수아로 보일 게다. 그들은 공수처가 있는 가나안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믿음의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물어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의 믿음은 어차피 이성에서 나온 게 아니니까."

이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진 전 교수의 주장처럼 '문 정권식 검찰개혁'(이하 '검찰개혁')은 정말 신흥종교가 되었는가? 지나친 과장법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이 다 그런 건 아닐 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부 사람들에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검찰개혁은 이 신흥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교도나 무신론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성전(聖戰)일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일부 유명인사들이 구사한 수사학을 감상해보자.

12월 23일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것과 관련,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골고다 언덕 길을 조국과 그의 가족이 걸어가고 있다"며 "예수의 길이다. 예수가 함께 걷고 있다"고 했다. 이연주 변호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박해받은 이유가 그러하듯이, 죄 많은 자들은 자신의 죄보다는 그 죄악을 들추고 없애려는 자를 더 미워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2021년 6월 11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정치 검사가 대권을 직행한다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를 악마한테 던져주는 거나 똑같다"고 했다. 아예 대놓고 '악마'라고 하다니, 이건 좀 해도 너무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윤석열·검찰=악마'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신도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2019년 10월 조국 장관이 사직한 날 김주대 시인은 "조국, 당신은 인간이 만든 인간 최고의 악마조직과 용맹히 싸우다 만신창이가 되어 우리 곁으로 살아서 돌아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온 가족을 발가벗겨 정육점 고기처럼 걸어놓고 조롱하며 도륙하던 자들은 떠나지 않고 우리 곁에 있으므로 우리의 철저한 목표물이 되었다."

또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2020년 5월에 출간한 '악마와 싸워서 이기는 정치'에서 "윤석열이라는 악마"라고 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다. 왜 여론의 다수는 "윤석열이라는 악마"를 죽이겠다고 달려든 문 정권의 검찰개혁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그들은 악마 추종자나 동조자들이란 말인가?

이범우 작가는 2020년 10월에 출간한 '희생양 박해와 서초동 십자가'를 통해 "보수카르텔에게 지목된 누구라도 또 다른 조국이 될 수밖에 없다"며 "'서초동 십자가'에 매달린 희생양은 역사적 진실로 부활할 것이다"고 주장한다.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이 책에 쓴 '추천의 글'에서 "십자가는 고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 승리다"고 선포한다.

절반 이상의 국민은 보수카르텔에 속하거나 그들의 농간에 놀아난 사람들이란 말인가? 김민웅 교수가 쓴 '조국 백서'의 발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른바 진보언론이라고 여겨온 일부 신문조차 정치검찰의 입이 되었고, 검찰의 의도에 넘어간 언론들이 우리 사회의 뇌를 지배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일부 진보세력들마저도 자신들을 괴롭혀온 바로 그 언론의 보도와 논리에 투항했다. 비판적 점검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묻고 싶다. "조국 전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있던 2년 간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자살을 한 사람이 4명이 나왔지만, 동료 인간의 고통에 신음하는 당신들은 왜 그땐 침묵했나요? 정파성 앞에서 '고통의 평등'은 없는 건가요? 사랑받던 고귀한 사람의 고통은 온 우주가 무너지는 비극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은, 아니 고통을 넘어선 죽음이라도 그건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요?"

'사악한 언론 탓'과 '어리석은 국민 탓'을 하는 사람들은 잠시 과거를 되돌아보면 좋겠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거둔 승리에 대해선 '우리 국민의 위대함'을 찬양하지 않았던가? 그땐 보수 카르텔이 잠시 죽거나 잠들어 있었나? 왜 국민은 어떤 경우엔 위대하지만 어떤 경우엔 어리석은 건지 그걸 설명해줘야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데 도무지 소통의 채널, 아니 언어가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이 문제를 '10 대 0'이라는 선악 이분법을 넘어서 '4 대 6', '3 대 7', 또는 '2 대 8'의 비율로 볼 수는 없는 건가? 이성으로 다뤄야 할 세속의 문제를 두고 종교적 사고와 언어로 말씀하시는 분들과 소통하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냥 같은 국민이자 동료 시민의 애정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수밖엔 없을 것 같다. 다만, 그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좀더 너그러워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부디 당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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