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화마 흔적 고스란히 창평시장 지금은

입력 2023.01.19. 13:54 박승환 기자
온전한 점포 온데간데없어지고
몽골텐트 임시 매장으로 손님맞이
명절 대목인데 손님 구경 힘들어
실수로 들어선 발길이라도 잡아야
상인들 “유명세 잊힐까 더 걱정돼”
민족 대명절 설 연휴를 이틀 앞둔 19일 오전 담양 창평전통시장. 한 달 가량 기다린 끝에 임시시장으로 문을 열었지만 시민들의 발길이 끊겨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사진=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불난 점포에서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화마에 매장을 잃었을 때도 견뎠는데 명절 대목에 단골손님 발길마저 끊겼다는 사실이 더 힘들고 춥네요."

민족 대명절 설 연휴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백년 전통의 창평시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한기가 맴돌았다.

창평시장 상인들은 화재 이후 한 달여에 걸친 재정비 기간을 가진 뒤 설 대목에 맞춰 2주 전에 임시시장을 개장했다. 상인들은 시장이 다시 문을 열면서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손님 발길이 뚝 끊기면서 황망함을 가누지 못했다.

19일 오전 담양 창평전통시장. 설 명절 대목을 앞두고도 흔한 흥정소리조차 없었다.

흰색 몽골텐트들이 화재로 앙상한 뼈대만 남은 기존 재래시장을 대신했다. 상인들은 명절 대목에 맞춰 제수용품과 지역 특산물 등을 정성껏 가판대에 진열했지만 이 모습조차 봐주는 손님은 없었다.

오일장(매달 5·10일)이 서는 날이 아니었지만, 설 대목을 앞둔 전통시장의 모습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첫 설 명절인 만큼 잔뜩 품었던 상인들의 기대가 한 달 전 시장을 덮친 화마의 여파로 인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그나마 찾아온 손님들도 낯선 시장 입구에 놀라며 서성이다 발길을 돌렸으며, 인근 공영주차장 부지에 마련된 임시시장을 여전히 주차장으로 인식하고 들어섰다가 차를 돌리는 시민들도 태반이었다.

담양군민 김옥수(68)씨는 "설 명절을 앞두고 시장을 찾았는데 예전만큼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아 시장이 아닌 줄 알았다. 도로와 주차장에 차들은 가득한 데 사람들은 온데간데없다"라며 "불이 났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적어도 20~30년 이상 자리를 지켜왔을 텐데 어쩌나"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드론으로 바라본 담양 창평전통시장. 민족 대명절 설 연휴를 앞두고 임시시장으로 문을 열었지만 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겨 휑했다. 사진=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광주에서 창평시장까지 온 김모(42·여)씨도 "차를 세우고 자연스레 늘 들어가던 입구 쪽으로 걸어갔는데 뼈대만 남은 시장 터를 보고 길을 물어 임시시장으로 올 수 있었다"라며 "헛걸음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나가는 손님들을 지켜보는 상인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했다.

화마 피해는 둘째치고 바로 코앞으로 자리를 옮겨왔을 뿐인데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임시시장이 개설됐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 '불 나서 볼 것도 없어'라는 소문은 상인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전통과자 등을 판매하는 김운경(62·수라판매장)씨는 "전통시장 특성상 유동인구가 많아야 하나라도 더 파는데 자리를 옮기니 썰렁해졌다. 마수(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도 못 한 상인들이 태반이다"라며 "시장 위치뿐만 아니라 점포 위치들도 전부 바뀌어서 단골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고 푸념했다.

삼진한과를 운영하는 김만섭(60)씨는 "옮겨오기 전에는 장날이 아니더라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구경하러 온 손님들이 꽤 있었다. 요즘은 오전 내내 3만원 팔아서 2만원 내고 밥 먹는다"라며 "손님들도 찾아오지 않는 데다가 상인들 모두 큰 평수에서 5평 남짓한 작은 평수로 옮기다 보니 물건 보관할 때도 마땅치 않아 한숨만 쉰다"고 토로했다.

웅장청과 허명애(54·여)씨는 "실수로 들어와도 반갑고 고맙다. 무조건 사달라는 말은 못 하더라도 말이라도 건네 볼 수 있지 않느냐"라며 "20년 정도 장사를 해오면서 길이 넓혀지는 것부터 쭉 함께했는데 상실감이 너무 크다. 나만 마음 아픈 게 아니라 누구 탓도 못 하겠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재건축까지 걸리는 시간이 2년에 달하는 만큼 임시시장 시설물 보강에 입을 모았다.

상인 A씨는 "주차장이었던 곳에 임시시장을 급하게 조성하다 보니 배수가 전혀 안된다. 며칠 전 비 왔을 때 질퍽질퍽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버섯을 파는 B씨는 "바닥에 아스팔트 포장이 시급하다. 배수가 안되니 사람들이 시장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라며 "아스팔트가 어렵다면 가로등만이라도 많이 설치해줬으면 좋겠다. 기존의 주차장에 설치된 가로등뿐이라 시장 전체를 밝히지 못해 오후 4~5시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김종구(68) 창평전통시장 피해복구 대책위원장은 "군에서 하루빨리 문을 열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줘서 고맙다.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처음인 만큼 모두가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자리를 잡아가면서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홍보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고 본다. 경품추천이나 할인을 비롯한 행사를 통해 하루빨리 상권형성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희망했다.

조성순(64·여) 창평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재건축 착공 전에 시설이 좋은 타 시·도의 전통시장을 담양군과 함께 방문해볼 예정이다. 공청회도 열어 상인들 의견을 수렴해 소통할 계획이다"라며 "합리적인 창평시장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상인들을 대표해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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