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귀촌 메타버스' MZ 아바타들 몰려들었다

입력 2021.09.01. 11:10 선정태 기자
['청년 6주 살기' 제페토에서 모집했더니]
전국 20·30대들 낯선땅 한옥에 모여
대면행사 일체없이 가상공간 환영식
영암 명소 '아바타 관광' 함께 인증샷
지역 청년들도 호기심 접속 "자부심"
관광 홍보·귀농귀촌정책 신세계 열어
영암군 기가마을에 모인 청년들은 가상공간 제페토에서 환영회를 진행했다.

"메타버스라는 알쏭달쏭한 단어 대신, MZ세대들이 놀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 하나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트렌드에 맞춰 지역을 홍보하고 청년들이 농촌에 관심이 갖도록 하고 싶습니다."

지난달 15일 조용한 영암군이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다. 서울과 울산, 대구 등 전국에서 모인 20대 청년들이 영암군 도포면 한 건물에 모여들면서 부터다. 처음 모인 자리인데도 가벼운 목례만 하고 이렇다 할 환영식도 갖지 않고 각자 방으로 흩어진 이들은 저마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열었다.

'제페토'에 접속한 이들은 메타버스 안의 또다른 영암군 숙소에 모여서야 공식적인 환영회를 진행했다.

영암군 기가마을에 모인 청년들은 가상공간 제페토에서 환영회를 진행했다.

건축 회사에서 안전 담당 업무를 맡아 치열하게 살던 청년, 웹디자이너를 하던 직장 새내기,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생활을 했던 종합병원 응급실 간호사, 놀이동산 직원, 법학과 학생 등 직장 생활에 지치고 취업에 실패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들이 휴학하거나 휴직서를 내기도 하고, 사직서를 제출하면서까지 이 곳에 모인 것이다. 영암이라는 지명을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개성을 살린 자신의 아바타로 입장한 청년들은 영암군의 한옥 앞에 모여 서로 인사하고 저마다 준비한 선물도 전달했다. 자유시간에는 한옥 인근에 있는 영암군 관광지를 돌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풍경은 영암군이 귀촌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하는 '청년 6주 살기'의 한 프로그램이다. 영암청년창업몰에 입점한 문화창작소와 함께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영암 월출산의 기운이 넘쳐나는 마을, 지친 청년들이 기운을 받아가는 곳'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됐다.

메타버스에서 진행된 기가마을 환영식 모습.

꼭 도시가 아니어도 되는, 어디서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자기 일을 하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취지로 '기가마을'로 정했다.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가 가능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들이 영암군에 입주하기 전 지원할 때도 메타버스를 활용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만큼 '줌(zoom)' 등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했지만 '탈락할 수 있는데, 얼굴을 알리기 부담된다'는 의견이 있어 '제페토'에서 아바타로 대신한 것. 가상의 내가 제페토에서 익명성을 보장받으면서 개성을 표현하며 포트폴리오를 설명했고, 그렇게 7명의 청년이 선정된 것이다.

이렇게 모인 청년들은 저마다의 아이디어로 농촌에서 생활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영암을 알리기'라는 공통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메타버스에서 진행된 기가마을 환영식 모습.

어떤 이는 영암 어르신과 소통하며 영정사진을 찍거나 중고생들의 졸업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영암군의 풍경에 감명받은 청년은 커튼을 제작, 지역 대표상품으로 출품했다. 영암 토종 남생이 모양의 얼음틀을 제작하기도 했고, 영암의 이미지에 맞는 향수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또 영암군의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인 무화정까지 가는 길이 불친절하다고 판단, 모두 모여 이정표를 만들어 곳곳에 부착하고 짧은 가이드 글귀도 설치했다. 이들의 작품은 단 하루밖에 전시하지 못했지만, 메타버스 안에서는 오랫동안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이 활동하는 제페토의 '영암군' 방은 원래 비밀번호를 설정해야 했지만 실수로 오픈 방으로 설정한 탓에 의도치 않은 인기도 누렸다.

기가마을 청년들의 활동 모습.

청년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던 지역 청소년들이 호기심에 메타버스에 들어와 구경하며 뿌듯함을 느낀 것이다.

기가마을 전민수 촌장은 "기가마을 메타버스가 입소문을 타고 중고생들이 방문하기도 했다"며 "'시골을 떠나고 싶다'던 학생들이 뿌듯함을 느끼고 자부심이 커진 것 같다고 말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메타버스를 더 확장시킬 계획이다"고 밝혔다.

전 촌장은 "영암군에 청년들이 유입하는 방법이 귀농만이 해결책이 아닐 것이라는 도전에서 시작됐다. 농업 외에도 농촌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며 "메타버스를 도입한 것도 이런 취지다. 아직은 처음 모인 환영회와 간단한 일기, 프로그램이 끝난 후 각자의 작품을 전시한 정도만 메타버스를 활용했지만, 확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영암군은 청년한달살기 프로젝트 2기 모집에 나섰다.

그는 "청년들이 지역을 돌아다니자 지역민들도 반가워했다. 청년들은 귀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고, 지역은 청년들이 들어오며 활기차 졌다고 기뻐했다"며 "9월 말 모집하는 2기에는 더 다양한 방법으로 메타버스를 활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영암=김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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