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 꼭 선견지명의 식견은 아니더라도 우리네 삶에서 위험을 예측하는 일은 사실 어렵지 않다. 놀이터에서 천방지축으로 뛰어 노는 아이에게서도,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사람에게서도, 운전 습관이 좋지 못한 드라이버에게서도, 평소 좋지 못한 행실로 입방아에 올랐던 유명인의 스캔들이 터질 때도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럴 줄 알았다'고.
멀리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참사 때에도 그랬다. 붕괴 전조 증상이 있을 때라도 조치가 취해졌더라면 이라고 말이다. 가깝게는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 화재, 잠원동 철거건물 붕괴,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원 사망 사건과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도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막을 수 있었다'고.
경미한 사고와 징후는 반드시 연쇄적인 대형 사고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산업재해예방분야에서는 이를 하나의 공식으로 명명하고 있다. 바로 하인리히 법칙, '1:29:300'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 반드시 동일한 원인의 작은 재해는 29번, 운이 좋게 사고까지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동일한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 한 사건은 300번, 그리고 이보다 더 잦은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빨리빨리 세상'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그런 차원에서 하인리히 법칙은 우리사회의 금과옥조처럼 인식되어야 하지만 그저 말 뿐이다.
우리는 무고한 시민의 수많은 희생을 목도하고도 참극의 교훈을 금세 잊는 듯하다.
2021년6월9일 16시22분 광주 동구 학동에서, 2022년1월11일 15시47분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벌어진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현장에서의 참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대한민국 재계 순위 28위의 HDC그룹, 시공 능력 9위의 현대산업개발이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 말고도 이 두 참사는 매우 닮아 있다.
공사로 인한 각종 위험성을 먼저 인지한 시민들의 민원이 수 백 여 차례 제기됐지만 이에 따른 적절한 조처는 이행되지 않았다. 수많은 위험신호가 있었지만 깡그리 무시된 셈이다.
이번 참사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오래전부터 이곳이 요주의 현장이었다라고 말했다.
평일, 휴일, 눈·비 상관없이 비산먼지, 소음, 진동은 일상이 된 지 오래고, 건축 자재물 낙하하며 일대 지반 침하에 누수, 균열 등은 월례 행사처럼 잦았다는 것이다. 장기 집회 시위, 다자간 TF도 구성했지만 다 헛것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러다 정말 큰 일 난다'며 입버릇 처럼 말했는데 결국 또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고 했다.
우리사회가 암묵적으로 묵인해 온 안전불감증, 속도·수익만 좇는 개발 사업 그리고 미숙한 관리·감독 등에 의한 또 다른 인재형 참사가 또 일어난 것이다.
HDC그룹 오너는 7개월 만에 또 광주로 와 국민들께 고개를 숙였다. 사태에 책임을 지고 직위도 내려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위기모면용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제3의 HDC현산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아무도 인지 못하는 악마를 찾아 내 척결하는 것이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주현정 디지털편집국 취재1본부 차장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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