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아. 그 사람들은 일생의 한(恨)을 풀려고 나온 것인데, 그것마저도 막으면 살지 말라는 거 아닌가."
뜻밖의 대답이었다. 전두환이 광주의 법원을 다녀간 다음날, 관할 경찰서로 가 전날 일로 수사가 진행되는 건이 있는지 물었다. 무리도 아니다. 전날 전두환이 타고 왔던 차량은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쓰고 쫓기듯 광주의 법원을 벗어났다. '피고인 전두환'은 이날 유죄 판결을 받고 '죄인 전두환'이 됐으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연희동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오월 어머니들은 가슴을 치며 도로 한가운데 주저앉아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계란투척은 경범죄고, 어머니들 행동은 불법도로점유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현행법 위반 소지를 들여다보고 있을지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눈빛 만으로도 웬만한 조폭들을 단숨에 제압한다는, '조폭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김태철 형사과장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이 접수되지 않았다'라는 원론적인 대답 대신, 지인의 부고를 들을 때 마냥 미간을 찡그리며 말한 것이다. "그러면 쓰겄는가" 맞다. 그러면 안되는 것은 누구일까. 경찰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말한 그도 전날 광주 법원 현장에 투입된 경비 담당자 중 한명이었다.
그 말에 다시 전날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뭔 짓거리여 진짜 날마다 에휴…"
판결을 받은 '죄인 전두환'이 법원을 떠난 직후 누군가의 말이 귀에 들렸다. 누군지는 모르나 전두환 재판마다 반복되는 이 상황에 푸념을 한 것일 테다. 첫번째 재판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전두환에 거의 육박하는 일까지 있었다. 100m도 안되는 거리를 탈출하는 데 30분이나 걸린 그날의 교훈 탓인지 두번째 재판부터는 펜스가, 이번 재판에 이르러서는 거의 진지구축에 가까운 방어선이 설치됐다. 한 품은 이들은 그 틈바구니를 끊임 없이 비집고 손을 내뻗었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재판 결과에 분을 삭이던 이들이 차 한대를 발견했다. 47수8559. "전두환 차다" 전두환은 타지 않았으나 분노한 이들은 차 바퀴를 부여잡고, 드러 누웠다. "반성 안할거면, 이 차라도 압류해. 압류하라고" 부질없기에, 그래서 더 처절하게 들렸다.
상황이 종료됐지만 어머니들은 도로 위에 덩그러니 앉아 넋을 빼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아들을 잃은 이, 오빠를 잃은 이, 남편이 고문을 당한 이였다. 제발 전두환 직접 한번 보게 해달라며 가슴을 치고 땅을 쳤다. 이 또한 부질 없지만, 탓하는 것도 부질없으리라.
잘못을 분간한 것은 법률가였고, 알리는 것은 기자였으며 안전을 지킨 것은 경찰이었다. 그럼 아픈 이를 위로하는 역할은 누구 몫일까.
어쩌면 그 책임은 함께 광주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부여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기를 바라본다. 서충섭 사회부 차장대우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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