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30대 초반으로 소위 5·18의 바깥세대다. 5·18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던 세대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5·18' 하면 초등학생 때 망월동 국립묘지에 전시 사진에서 봤던 '끔찍한' 죽임을 당한 시민들의 모습만이 생각나는, 오월에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젊은 세대 중 한 사람이었다.
언론사에 입사하며 5·18을 기사로, 자료로 조금씩 알아가던 기자는 40주년이 된 올해에서야 부끄럽게도 80년 5월 광주를 조금 더 가슴으로 느끼게 됐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계기였다. 책을 본 이후 몇 날 며칠을 여운에 빠졌다. 아직까지 누군가의 상처이자, 인생의 한 부분인데 누가 어떤 자격으로 '지겹다' 말하고 폄훼할 수 있나.
이런 감정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준비한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로 이어졌다. 5·18을 그저 '광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로만 인식했던 기자는 극을 보고 충격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도 했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이곳에서 정말 일어났다니…. 80년 5월의 광주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비극적이었다. 그 시절을 견뎌낸 이들이 내 가족이자, 이웃이라니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었다.
광주 첫 브랜드 영화 중 하나인 '아들의 이름으로' 또한 시사회 이후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중장년의 관객들을 보며 이들에게 80년 5월이란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하게 공감할 수 있게 됐다. 예술의 힘이 그렇다. 공부할 대상으로만 여겼던 5·18민주화운동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좀 더 알고 싶게 한다.
올해 40주년을 맞아 예술인과 예술단체는 물론 다양한 기관 등에서 5·18 마흔 해를 기리는 기념작, 기념행사들을 만들어냈다. 진작 이뤄졌으면 좋았으련만, 40주년이 돼서야 나온 몇몇 결과물들이 아쉬움을 남기지만 지금에라도 오월 광주를 예술로 승화한 것은 다행이고, 잘한 일이다.
다만 여러 기념작, 기념 행사에 대한 연령대별 반응을 취재해봤을 때 타겟층을 정확히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오월 작품은 세대에 따라 평이 정확히 둘로 나뉘는데, 중장년층은 좀 더 장엄하고 역사적 깊이를 원하는 반면 청년층은 너무 무겁지만은 않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동안 우린 영화 '택시운전사', 소설 '소년이 온다' 등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월 정신의 대중화, 세계화는 물론 다음, 이 다음세대까지 5·18의 의미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은 예술·문화에 있다는 것을.
'40주년 한정'이 아닌 41주년, 42주년, 49주년에도 오월의 작품화가 이어진다면 10년이 지난 50주년에는 어떤 장르에서든 이미 자리 잡은 브랜드 작품 하나쯤 있으리란 기대를 가져본다.
김혜진 문화체육부 차장대우 hj@srb.co.kr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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