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직장 동료 동반귀농···고추농사 '매운 사내들'

입력 2021.09.14. 10:45 선정태 기자
[농어촌으로 U턴, 청년 느는 전남 ③해남 너이농장]
"우리 손으로 직접 친환경 농사"
농산물 유통회사 사표 던지고
남들 꺼리는 밭작물에 도전장
귀농 6년차에 "아직도 멀었다"
프리미엄 농산물 목표로 최선
"실패 두려워말라" 귀농 조언도
직장동료였던 이현·장정근·양태석(왼쪽부터)씨는 2016년 '아이들이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함께 생산하자'며 해남군에 귀촌, 친환경 농법으로 고추와 감자,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농어촌으로 U턴, 청년 느는 전남 ③해남 너이농장]

"언젠가 우리가 직접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해보자"고 뜻을 모으던 친환경농산물 유통 회사 동료 4명이 뭉쳤다. 같은 직장이지만 구례와 대전 등 멀리 떨어져 있어 회의하기 쉽지 않았지만 매주 한번씩 모여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몇년간의 준비 기간동안 친환경 농법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재배한 작물은 어떤 유통 경로를 통해 판매할 것인지 의견을 주고받고 고민했다.




귀농은 이론만 오랫동안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뛰어들어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된다고 결정한 청년들은 지난 2016년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과감히 도전했다. 그렇게 해남군 현산면에 터를 잡고, 귀농인들은 기피하다 싶히 하는 밭작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 "농촌에 경쟁력 있다" 젊음 투자할 가치 충분

이렇게 이현(42)·장정근(36)·양태석씨는 연고도 없는 해남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이들에게 해남은 낯선 지역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양씨는 전남이 낯선 고장이었고, 여수에서 나고 자란 이씨 역시 서부 지역의 풍경이 어색했다.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던 장씨도 마찬가지였다.

농대를 졸업한 후 친환경농산물을 구입하는 부서에서 같이 업무를 맡으며 친해진 이들은 많은 농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거나 친환경 인증 업무를 돕는 것은 물론 농업인들을 컨설팅한 것들이 자신들의 진로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면서 '농촌에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이 들어 젊음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너이농장이 올해 수확한 고추.

그러면서도 '언젠가는'이라는 단서가 붙은 귀농 결심이었지만, 나이나 시기를 정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10년 넘게 다니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시기가 왔다고 판단해 귀농을 결심한 것이다. 각자 2천500만원의 출자금을 모아 1억원을 만들어 든든한 초기 자금으로 사용했다.

가족들의 반대도 없었다. 오히려 적극 응원했다. 오랫동안 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모임하면서 나온 이야기들이 귀농의 추진력이 된 셈이다.

이씨는 "오랫동안 결심하고 다짐했지만 막상 시기는 정하지 못했다"며 "큰 다짐보다 작은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이 든 순간 곧바로 실행했다"고 밝혔다.

너이농장 공동대표 정근씨가 출하를 앞 둔 고추를 다듬고 있다.

이들이 귀농지를 물색하던 시기에 해남의 배추 밭에서 농사일을 배우면서 시작했다. 숙식만 제공받으며 6개월간 실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남에서 땅을 임대해 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밭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다. 더군다나 친환경으로 밭작물을 키우는 것은 몇 배나 더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만의 철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4명의 동료가 모여 농장 이름도 '너이농장'으로 명명했지만, 한명은 함께 오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을 다니며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상황이라 자신들의 꿈인 귀농을 선택하기 수월했지만, 다른 한명은 미혼인 까닭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농사 지으며 살면 결혼하기 힘들 것 같다. 빨리 결혼해 합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농촌 총각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판단이었다.

너이농장의 공동대표 정근씨가 올해 수확해 건조한 고추를 바라보고 있다.

◆힘들지만 친환경에 적합한 밭 작물 선택

이들에게는 얼마 전부터 유행하는 아열대작물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친환경농산물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그렇게 고되고 힘든 밭작물을 선택했고, 주요 작물도 고추로 정했다. 이들은 3천여 평의 노지와 2천여평의 하우스에서 고추를 키우고 있다. 또 2만여 평의 고구마와 2만여 평의 초당 옥수수도 키우고 있다.

너이농장 공동대표 이현씨가 출하를 앞둔 고추를 다듬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유통회사 입사 조건이 농대 졸업인데다, 업무도 농업과 농민, 농촌을 대상으로 해서 다른 귀농인들보다는 지식이 많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배울 점이 많았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직접 뛰어든 현장은 옆에서 보거나 들은 이론과는 크게 달랐던 것이다.

해남군기술센터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강사를 찾아 배우기도 했다. 이웃의 어르신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그들은 귀농 6년차인 올해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어렵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한 듯한 '친환경 농산물'을 키우는 일은 일반 농산물보다 몇 배는 힘들다. 그래서 그만큼 할 가치가 있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너이농장 공동대표 이현씨가 밭일하기 위해 트렉터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들이 가장 많이 투자하고 신경 쓰는 부분은 땅이다. 친환경의 시작과 끝은 양질의 흙이라고 판단해 양질의 퇴비로 힘이 강하고 비옥한 땅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 보여준 빨갛게 말린 고추는 크고 윤기가 났다. 매콤한 고추 향과 함께 알 수 없는 단 향도 나는 기분이었다.

친환경 농산물을 키우는 만큼 화학 살충제는 일절 쓰지 않는다. 농장 위치도 이들에게는 행운이었다. 인근 밭이 농약을 살포하면 그 곳에 있던 해충은 물론 익충도 농약에 오염돼 전파시킬텐데, 산 아래 농장과 밭은 너이농장이 독차지 하고 있어 오염에 대한 위험이 없는 것이다.

양씨는 "우리 아이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키우는 원동력이다"며 "우리 아이들이, 다음 세대가 건강하게 크고 자라기 위해서는 좋은 농산물이 필수다.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하면 고돼도 힘이 솟는다"고 밝혔다.

너이농장 공동대표 양태석씨가 고추 밭에 농약을 살포하기 위해 드론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우리 농장만의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건강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더 건강한 퇴비, 더 좋은 약을 쓴다. 정성을 더 기울이면 더 좋은 작물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 "돈이 아닌 친환경이라는 가치에 투자"

친환경 과일과 달리 밭작물은 친환경 농산물이더라도 일반 농산물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친환경농산물, 특히 말린 고추는 공급이 부족해 안정적인 판매가 가능하다. 너이농장의 생산 물량 대부분은 학교 급식에 판매되는데, '아이들에게 건강한 농산물을 먹이고 싶다'는 이들의 취지와도 통한다.

너이농장의 밭.

다만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로 학교 급식이 제한되면서 일괄 대량 구매에서 소량 구매로 바뀌어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너이농장의 고추는 향도 좋고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가정이나 식당에서도 구매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올해는 인터넷 판매도 시작했다. 지난해 개인의 구매가 전체 물량의 10~15%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30~40%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이씨는 "밭작물은 큰 돈을 벌기 힘들다. 친환경농산물이라고 몇 배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하지만 친환경농산물 생산은 우리가 정한 가치에 대한 선택이었고, 그 가치를 충분히 실현시키고 있어 만족한다"고 밝혔다.

너이농장의 고추 비닐 하우스.

이들에게는 모든 일이 늘 도전의 연속이다. 자신들의 농장을 알리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농산물은 프리미엄화할 계획이다. 고추도 더 예쁘고 빛깔 좋은 맛의 고추를 생산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양씨는 "친환경농산물이니 모양이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며 "농업인들은 친환경으로 지으면서도 보기에도 좋게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다른 작물을 키워볼까'하는 여유가 생길 때가 우리 도전의 완성단계일 것"이라며 "귀농 10년차에 완성단계에 오르고 싶고, 그 때가 되면 토마토나 딸기도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해남군 너이농장 팜플렛.

◆ 귀농했다면 "동네 사람들과 먼저 친해져야"

너이농장이 있는 마을은 모두 9가구가 사는데, 이들이 입주했을 때는 데면데면했다. '내 일만 잘하면 되지. 억지로 친해질 필요 있나'하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다 마을 진입로 문제로 의견을 냈다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초기에는 시골 텃세로 느껴 힘들었던 이들은 어느 순간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웃집에서 '오후 6시에 같이 식사하자'며 저녁 초대를 했는데, 같이 일한 일꾼들을 보내고, 하루 일을 정리하다 보니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부랴부랴 찾아갔더니, 모인 마을 사람들이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기다렸던 것이다. 어찌보면 작은 일이지만, 시골의 정을 느끼게 됐고 이날을 계기로 부쩍 친해졌다.

해남군 너이농장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한 고추로 만든 고추가루.

장씨는 "도시에 살면, 친한 동료 아니면 친근한 사람이 없지 않느냐. 옆집과도 왕래가 없기도 하고"라며 "그런 생각 그대로 접근하니 마찰이 생긴 것 같다. 농촌 정서를 배우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 만큼 예의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직장동료였던 이현·장정근·양태석(왼쪽부터)씨는 2016년 '아이들이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함께 생산하자'며 해남군에 귀촌, 친환경 농법으로 고추와 감자,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중한 사전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귀농 초기 소득이 기대보다 낮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인 뒷받침은 필수다"고 밝혔다. 또 "농사가 실패할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초기에 많은 투자를 하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엄두가 안 난다. 서너번 도전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해남=박혁기자 md181@mdilbo.com


"부농 많은 해남, 청년귀농지원도 짱짱"

김기수 해남군농업기술센터장


김기수 해남군농업기술센터장

"귀농 시작 단계부터 시행착오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해남군이 돕고 있습니다."

김기수 해남군농업기술센터장은 "해남군은 고소득 귀농인이 전남도내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며 "특히 귀농인의 유입과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지난 2016년 귀농귀촌희망센터를 개관하고, 귀농인을 위한 맞춤형 상담과 지원은 물론 지역 특색을 반영한 각종 정책과 시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다"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올해 해남군은 다른 지자체보다 더 우수한 귀농어귀촌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며 "신규 사업인 귀농·귀어인 유치를 위한 빈집 리모델링 사업을 비롯한 귀농·귀촌인의 종합안내서인 '행복한 귀농어귀촌 1번지, 땅끝해남' 책자 발간, 농어촌지역 유휴자원을 활용한 은퇴자 공동체 마을 사업, 전남에서 잘살아 보기, 농촌에서 살아보기 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해남군은 성공적인 청년농업인 영농 정착을 위한 다양한 청년농업인 육성·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지난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청년농업인 육성 사업을 통해 2018년 21명, 2019년 17명, 지난해 23명에 이어 올해도 38명을 지원하고 있다"며 "청년농업인을 위한 보조.공모사업은 모두 24개 사업으로 128명에게 26억 3천만원을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영농 경력에 따라 매월 최대 100만원씩 3년간 지원하는 영농정착금 지원, 세대당 최대 3억원을 지원하는 창업자금 융자 지원도 포함돼 있다.

김 센터장은 "청년농업인의 경영 실습을 위해 내재해형비닐온실을 최대 3년까지 임대해주는 사업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해남군은 내년 150명, 2023년 250명에 이어 2024년에는 400명까지 청년농업인을 육성할 계획이다.

그는 "실습을 위한 임대 농장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으며, 다양한 지원을 통해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귀농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며 "특히 농지 취등록세 50% 감면, 농업소득세 면제, 건강보혐료 50% 감면을 비롯해 농어촌공사 농지은행 농지 매매·임차 우선 순위, 융자 신청 시 농신보 보증 비율 우대와 보증심사 간소화 등 청년 귀농인을 위해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청년 귀농인을 위해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는 해남군에 귀농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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