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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 동네목욕탕 가보니 “묵은 때 벗기고 새날 살아야제”
입력 : 2020년 01월 21일(화) 17:01


가족들 볼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
쌈짓돈으로 손주들 세뱃돈 마련
음식 장만 등 ‘골치’ 호소하기도
추억 깃든 동네목욕탕 점차 줄어
1971년 개업해 50년째 운영 중인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마을탕.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남탕과 여탕 입구 가운데 놓인 매표소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설 명절을 앞두고 동네목욕탕도 간만에 대목을 맞았다. 21일 광주시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조그마한 동네목욕탕을 찾아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평범한 이웃들의 설맞이 이야기를 들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날 오전 6시40분, 이모(84·산수동) 할머니는 파란 플라스틱 목욕바구니를 챙겨 들고 간만에 목욕탕을 찾았다. 그간의 묵은 때를 벗긴다는 마음으로 온탕에 들어가 몸을 푹 불렸다. 사흘 뒤면 오랜만에 집에 올 자식들과 손주들을 생각하니 디스크로 아팠던 허리도 말끔히 낫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탕 속에서도 온통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낙지와 넙치를 어떻게 요리할까하는 생각만 든다.

이 할머니는 “명절이라 목욕 할라고 왔어. 내가 자식이 2남2녀에 그 아래 손주들만 8명이여. 지난번에 생일이라고 받은 용돈 있는디 세뱃돈으로 다 나가겄어. 그래도 하나도 안 아까워”라며 목욕을 막 마쳐 뽀얘진 얼굴로 웃었다.

음식·차례 등 신경 쓸 게 한 둘이 아니라 힘들고 걱정스럽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40, 50대 주부들은 “설이 오기도 전에 머리가 지끈 거린다”며 “음식 하지, 상 차리지, 상 치우지 할 게 너무 많다. 명절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이는 좋은 자리인 만큼 명절에 여행을 가는 방식 등으로 바꾸면 스트레스가 덜할 것 같다”고 희망사항을 전했다.

간만에 대목을 맞은 목욕탕 사장님 얼굴에도 미소가 퍼졌다. 17년째 지산동에서 목욕탕을 운영 중인 A씨는 “집 마다 욕실이 잘 갖춰져 있다 보니 요즘에는 명절이라고 목욕을 오는 사람들이 적다”면서도 “여전히 명절이 되면 손님이 많이 늘어난다. 세신을 하며 묵은 때를 벗기고 새로워지자는 의미다”고 전했다.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대호탕은 1969년 영업을 시작해 52년째 마을 주민들 곁을 지키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과거에는 명절뿐 아니라 입학과 졸업, 개학 등 특별한 날을 앞두고 가는 곳이 동네목욕탕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집 근처에 있을 것 같던 동네목욕탕은 대형 사우나, 집집마다 있는 욕실의 발달로 그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 광주시 등에 따르면 1995년 360여곳에 달했던 광주시 내 목욕탕은 2005년 272곳으로 줄더니 지난해에는 198곳에 불과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매년 7곳 정도가 문을 닫은 셈이다. 대형 사우나 등을 제외하면 동네 목욕탕 수는 더 적을 것으로 보인다.

이인혜 학예연구사는 지난해 11월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목욕탕, 목욕에 대한 한국의 생활문화’를 통해 “목욕탕은 특별한 날을 앞두고 가는 연례적인 공간이었다. 80-90년대를 지나 점차 목욕탕이 사라지면서 그곳에서 함께 했던 우리의 삶의 모습과 추억도 희미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